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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죽은 노인을 안내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보통은 사자들이 안내한 자를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기억할만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돌아오는 내내 그 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내가 안내한 그 노인은 살아생전부터 저승으로 갈 길을 예측이나 한 듯이 나를 앞질러 걸었다.

"이보시게. 그렇게 앞장서 가다 다른 길로 가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내 말을 들었는지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허, 희한한 자일세."

이제 막 이승을 떠나는 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이거나 저승길이라는 걸 알고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런데 이 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자, 내 뒤로 오시게."

그 자는 내 말을 안 들을 수 없으니까 마지못해 내 뒤로 가서 따라왔다. 한참을 그렇게 따라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또 앞질러 가고 있었다.

"어허, 저승으로 가는 게 뭐 그리 급하다고 앞서 가는가?"

그 자는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내 뒤로 와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보아하니 마음이 급한 모양인데 그 사연 좀 들려주시겠나?"

그 자는 내 말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허허, 왜 그러시는가?"

"아이고, 늙은이가 주책없게 저승사자님께 말씀드리기가 좀……."

"괜찮네. 저승까지 가는 마당에 부끄러운 일이 뭐 있겠나. 편하게 말해보시게."

그 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은 말입지요. 제가 여든 여덟입니다. 할멈은 이 년 전 여든네 살에 저승으로 먼저 갔습지요."

"음, 그랬군."

"저는 열여섯 살, 할멈은 열네 살에 혼례를 치렀지요. 자식도 여럿 두었고 그럭저럭 밥 굶지 않고 살다보니 나이만 먹게 되었습지요. 아, 그런데 할멈이 여든이 되는 해부터 조금씩 기억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자는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대목에서 들뜬 흥분을 했다. 그것이 조금 의아스러웠다.

"처음에는 치매려니 했는데 아닌 것 같았습지요. 시간이 가면서 일상생활을 잘 못하게 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더군요. 기가 막혔지요. 갑자기 어린애가 되어버린 할멈 시중을 다 들어줘야 했으니까요."

"음, 고생이 많았겠구먼. 그런데 처음 말을 꺼낼 때 좀 들뜬 것 같던데 아닌가?"

그 자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목덜미를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아이고, 저승사자님이라 그러신지 눈치가 백단이십니다요."

"허허. 사실은 나도 삼백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안내하는 죽은 자와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해보기는 처음일세. 그래 그 다음 이야기나 들어봄세."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이 들었지요. 그동안 고생만하다가 이게 뭔가 하고 안쓰럽기도 했고요. 아,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멈이 나를 대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처녀가 총각을 대하 듯 하지 뭡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그막에 연애라는 걸 했습지요."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 자는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민망해하고.

"주책입지요?"

"아, 아니네. 참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가서 나도 부러우이."

"정말이십니까?"

"그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하하하. 그래서 그 아리따운 처녀를 만날 생각으로 그리 급했던 겐가?"

그 자는 입술을 실룩이면서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더니 대답했다.

"사자님이 주책이라고 욕하실지 몰라도 저는 어서 가서 할멈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뜁니다요."

나는 내 뒤를 따라오며 어린아이처럼 달뜬 그 자의 어깨를 잡고 앞서 가라고 했다. 그자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앞으로 와서 사뿐사뿐 걸어갔다.

나도 참으로 오랜만에 저승사자가 된 일이 흐뭇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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