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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24 11:00:48
  • 최종수정2018.05.01 14:33:54
[충북일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무려 3년 1개월에 걸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과 함께 끝났다. 그로부터 한반도는 65년 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은 늘 남북문제를 활용하기에 바빴다. 60년 넘는 세월동안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 4강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다.

1989년 임종석과 임수경

80년 대 대학생이라면 임종석과 임수경을 모두 기억한다. 전국을 흥분하게 만들었던 통일에 대한 열기. 그 중심에 임종석과 임수경이 있었다.

1989년 충청권 4개 대학교가 각 10명 씩 모두 40명으로 통일선봉대를 꾸렸다. 이들은 부산에서 경북, 충청을 거쳐 판문점까지 통일대행진을 벌였다.

가는 곳 마다 경찰의 삼엄한 검문이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통일선봉대는 부산에서 출범한 뒤 경북 영남대, 충청 한남대를 거쳐 서울 한양대에 도착해야 했다.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통일대축전 행사장인 한양대에 집결하기 위한 학생들이 경찰의 검문검색으로 수백 명 이상 연행되자, 전대협 지도부가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대학생 전원을 하차시킨 뒤 지하철이 달려야 할 철로를 학생들이 달려 한양대에 진입한 사건이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일부 학생들은 이 사건을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우쭐했던 행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 성북경찰서 유치장에 임수경 방북 소식이 전해졌다. 몸에 상처가 남으면 곤란하다며 몽둥이로 발바닥을 수십대 때렸던 경찰들이 전해준 소식이다. 곧바로 노량진경찰서로 분산됐다.

여기서 반성문을 썼다. 그리고 석방됐다.

당시 학생들은 통일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임종석과 임수경이 계획한 실제 방북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988~1989년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임종석. 그가 지금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임수경도 전직 국회의원이다.

당시 전대협 핵심이었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박원순 현 시장에 밀렸다.

임수경 방북 사건 후 학생운동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주의) 간 극단적 노선싸움을 벌였다.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

김 위원장은 앞서 '핵동결 의지'를 피력했다. 한·미·일 3국 내부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퍼주기'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인 실천계획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속칭 '찌라시'를 통해 회자되는 내용을 보면 '남쪽은 파주, 북쪽은 개성'까지 군사들을 후퇴시키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며, 남북 군사가 물러난 군사분계선에 남북합작 대형 스포츠 시설을 건립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시선도 상당 부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북한은 여전히 '핵 폐기'를 마지막 카드로 쥐고 있다는 점이다.

20~40세대의 남북문제

과연 가능할까. 핵을 폐기하지 않고도 남북이 공존할 수 있을까. 재선에 눈 먼 트럼프가 한미 FTA와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핵동결 프로그램'에 동의하고, 우리로부터 실익을 챙길 가능성은 없을까.

한반도가 요동친다. 그럴수록 우리는 반드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

과거 임종석·임수경 시대처럼 막연한 동포애(同胞愛)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

이제 우리사회의 주류층이 바뀌었다. 20~40세대들은 북한을 동포의 관점보다 글로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합리적 남북관계를 위한 파트너십을 요구하고 있다.

핏줄을 중시하는 봉건적 마인드보다 국가와 국가 간 미래지향적인 협상을 기대하고 있다.

협상의 결과는 당연히 평화를 위한 대장정이어야 한다. 돈 보다 더 중요한 신뢰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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