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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작가의 미국여행기 - 빛의 마술이여, 핑크빛요정들이여, 신의 정원이여

안텔로프캐년-브라이스캐년-자이언캐년

  • 웹출고시간2018.04.23 18:20:09
  • 최종수정2018.06.04 14:43:26
◇빛의 마술.

인디언성지 모뉴먼트밸리의 감동을 그대로 안고 '안텔로프캐년'으로 향했다. 우리네 남자들을 닮은, 무표정하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눈을 가진 인디언청년이 지프 운전대에 앉아있다. 꽁지머리를 길게 묶은 그가 운전하는 오픈카를 타고 황토먼지바람을 헤치면서 캐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빛의 마술이 펼쳐진다는 동굴이 저만치 보인다. 동굴의 입구는 평범해 보이는데, 저 안에 무엇이 있기에 세계인들이 몰려드는 걸까. 궁금해 하며 동굴로 들어섰다. 한 줄로 서서 걸어야할 정도로 좁고 어두운 동굴이나 동굴은 아닌 것이, 하늘에서 보면 사막 가운데에 그저 갈라진 틈새일 뿐 이어서다. 그 틈새가 아래로 들어와서 보면 높고 좁은 슬랏(slot)을 이룬다.

빛과 대지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한 조화다. 동굴 안에 기이한 빛의 예술이 숨어 있었다. 천장에 뚫린 여러 형태의 좁은 틈새로 태양빛이 쏟아져 내려 바위벽에 부딪혀 기묘한 마술을 부린다. 나는 그저 하늘로 손을 뻗어 셔터를 누르기만 했음에도 늑대, 클레오파트라, 촛불, 하트, 등 문양들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 옛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막에 내리는 홍수가 지표면에 흡수되지 못하여 좁은 캐년을 배수로 삼아 들어와 오랜 시간 침식했다. 그 후 물이 빠진 뒤, 동굴 벽에 아름다운 결을 만들게 되고, 마침내 틈새로 빛을 받아 감동의 예술을 펼치는 것이다. 인간의 기술로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시간예술이라는 걸 깨달으며 난 빛의 마술을 맘껏 즐기었다.
◇핑크빛 요정의 나라.

좁은 동굴에서 나와 미국의 6대 캐년 중 한곳인 '브라이스캐년'으로 이동했다. 애리조나주의 광활한 사막풍경과는 달리, 유타주를 달리다 보면 우리나라 강원도를 생각나게 하는 목장풍경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긴 시간동안 황량한 모하비사막을 보다가 만난 파란 숲은, 이국땅에서 아련한 노스탤지아를 느끼게 한다. 드디어 인디언국립공원인 브라이스캐년에 도착했다. 아! 핑크빛 궁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숲 가운데 있는 살구빛 첨탑 요정의 나라가 있다. 누가 저 바위에 저런 색칠을 했을까. 퇴적·융기·풍화,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지질학 용어 그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도미노 패를 줄지어 세워놓은 것 같다. 수만 개의 기기묘묘한 돌탑들이 정지된 시간의 한 페이지 속으로 나를 집어넣는다. 아찔한 낭떠러지를 끼고 각양모양을 뽐내는 돌들의 전시장을 둘러보는 짜릿함, 이거대한 작품의 비밀을 누가 알리. 수수만년 전에 땅이 바다였기에 빚어진 것이라는 것밖엔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살구 빛 첨탑들의 눈물을 본다. 희귀한 모양들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비를 머금어야 했을까. 물의 침식이 바위를 붉게 만들고, 켜켜이 쌓인 세월은 오밀조밀 돌들을 파내어 작품을 냈다. 장구히 서있는 돌들의 의연함에 신도 그 손길을 멈추었구나. 붉은 맨살에 새겨진 기나긴 시간의 흔적사이에 갓 피어난 초록나무한그루가 부끄러운 듯 흔들리고 있다. 땅 끝으로 내지르며 연주하는 붉은 첨탑들의 현란한 오케스트라선율에 구름마저 흘러가다 멈추고 요정들의 궁전을 낮게 드리운다.

먼 옛날, 구름이 비를 쏟고 빛을 불러 무지개 환호를 울릴 때쯤, 침묵하던 전설의 서곡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여본다. 돌들의 광휘, 황토 빛 파도, 이 광경 앞에 누가 감히 산이 푸르다할까. 빛이 존재하는 한, 빗물이 존재하는 한, 붉은 피가 흐르는 또 다른 시간의 전설을 브라이스캐년은 쉬지 않고 만들어 갈 것이다. 하늘이 깊고 넓게 열리고 있다. 나는 그날,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신의 정원.

핑크빛 첨탑들과 인사하고 미국의 3대 캐년 중 하나인 자이언캐년으로 이동했다. 19세기 중반 몰몬교도가 발견하여 '신의 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인, 풍광과 섬세함이 빼어난 협곡이다. 살구 빛 아기자기한 브라이스캐년이 여성미를 풍긴다고 한다면 자이언캐년은 수컷 맵시가 물씬한 야성미가 넘치는 선 굵은 바위봉우리들이다. 하늘로 치솟은 화성암에 빨강, 갈색, 노랑, 등 다양한 색깔들이 곱게 어우러진 별천지, 수백 미터 높이 솟아 도열하는 장대한 바위산들 가운데로 '버진' 강이 흐른다.

'신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고요하기까지 하다. 미국이지만 가장 미국답지 않으며, 가장 깊은 서부이지만, 신의 정원답게 산들은 평화롭고 안온하다. 붉은 암반과 수풀고원의 요염한 자태 속으로, 깊고 강한 기운 속으로, 도무지 감지할 수 없는 신비 속으로, 나는 홀연히 빨려 들어갔다. 지구상 깊은 산 속 어느 곳, 오묘한 자연의 유혹에 가슴은 뛰고 온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서부의 전설을 온몸에 휘두른 듯 나의 정서는 낭만의 향취로 그득했다.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 당당하면서도 고요하게 풍기는 성스러움에 압도되어 나는 오래 서있었다.

/ 임미옥 수필가

임미옥 작가 프로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푸른솔문학등단
제20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강사
저서 '음악처럼', '수필과 그림으로 보는 충북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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