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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02 14:08:06
  • 최종수정2018.04.02 14:08:06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다시 봄을 맞이할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봄나물이다. 새봄의 녹색 식탁을 처음 채우는 냉이는 수천 년 동안 즐겨온 백성들이 봄나물의 보배로 꼽았다. 아리 새콤한 달래무침이나 알싹한 달래장으로 금방 한 쌀밥을 쓱쓱 비벼먹을 때나 된장을 약간 풀어 씀씀하게 끓인 냉잇국을 먹을 때면 '혀가 음식 맛을 아는 것처럼' 입속에서부터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달래와 냉이, 쑥 등 봄나물을 뜯고 캐어 먹는다가 한 두주를 지나 온갖 산나물과 고사리, 두릅이 새순으로 돋아 먹게 될 무렵부터 봄나물의 만찬은 최고조에 이른다. 여기에다 쓰디쓴 맛의 씀바귀, 쌉싸래한 엄나무 순까지 더해지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 봄나물을 초유의 보약이라 여겼다.

봄나물의 향연은 정학유가 1816년에 한글로 지은 노래 '농가월령가'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월령'에는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바위를 깨치나니."라 하였다.

쓴맛의 최강자인 머위를 먹을 수 있는 3월말까지 봄나물의 첫 주자는 냉이(薺菜)이다. 기원전 6세기경 편찬된 중국의 '시경'에 처음 나온다. "누가 씀바귀가 쓰다고 하는가. 그 달기가 냉이와 같다."고 하였다. 후한 때의 유희는 '석명'에서 제(薺)로 표기하고 "냉이의 맛은 달고, 냉이로 나물을 만들어 먹고 냉잇국을 끓여 먹는데 좋은 재료"라고 적었다. 최고의 농서인 '제민요술'에는 "냉이는 봄나물의 일종으로 독특한 풀내음이 있다."고 하였으며, 약왕 손사막의 '비급천금요방'에는 "굶주릴 때 냉이는 배를 부르게 해줌으로 생명을 연장해 준다."고 하였다. 당나라 한유는 "아침에는 냉이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반찬으로 먹는다."는 고사를 남겼다. 중국 북송 때의 도곡은 '청이록'에서 "사람들은 냉잇국을 백세갱(百歲羹)이라 불렀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냉이를 먹을 수 있었고 이를 먹으면 백 살까지 장수한다."고 하였다. 10세기 말엽 당나라의 고승인 이산혜연 선사는 발원문에서 "모진질병 돌 적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한다."고 하였듯이 냉이는 약풀로, 보릿고개에 사람 목숨을 살리는 풀로서 무릇 백성들의 구황식물이었다.

춘곤증을 몰아내는 만병통치약이던 냉이는 고려시대인 1236년에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처음 간행된 '향약구급방'에 '내이(乃耳)', '나이(那耳)'로 적혔다. 허준이 1610년 완성한 의학서인 '동의보감'에는 "냉이가 논밭과 들에서 자라는데 겨울을 지나면서도 죽지 않는다. 죽으로 끓여 먹는데 눈을 밝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하였고, 1740년경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기름진 육식만 배부르게 먹는 사람은 이레 동안만 먹지 않아도 죽는데, 겨와 찌꺼기를 먹는 백성이나 가난한 선비는 나물만 먹어도 스무 날 동안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알칼리성 식품인 냉이는 배고픔을 이겨내는 구황식물이었다. 조선총독부가 1920년 3월말에 발행한 '조선어사전'에서 '냉이'로 처음 표기한 다음 상용화되었다.

빈 땅에서 생겨난 반가운 나물 또는 사람을 따라 다니는 풀, 채소중의 감초로 불린 냉이는 그 쓰임새와 성질이 다양하다. 냉이는 나물반찬으로 먹고 양을 불리는 죽이나 밥에도 넣었지만, 뽀얀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끓인 냉잇국을 최고로 꼽는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 때부터 "민간에서는 속담으로 음력 삼월 삼짇날 먹는 냉이를 만병을 통치하는 영약"이라 불렀고, 명나라 때의 명의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이르기를 "불교에서는 냉이를 생명을 보호하는 풀(護生草)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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