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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승사자들에게 공포였던 퇴출자 선별작업이 2차 퇴출대상자를 확정하고 나자 대상자에 속한 자들을 제외한 사자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희희낙락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즘 몇 건의 사건사고가 터졌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 같았으면 이러쿵저러쿵 난리법석을 떨며 관심을 갖고 참견을 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저승세계 문화가 최근 들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동방도 그런 낌새를 느껴서인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자님. 참 이상해요. 그렇지 않나요?"

"뭐가·" "우리, 지금 저승세계에 있는 거 맞죠?"

나는 동방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이면서 대꾸했다.

"또 엉뚱한 소릴 해서 헷갈리게 할 거면 다른데 가서 하게나."

"헤. 사자님이 장난을 걸어주니까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좀 우울했거든요."

동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나는 차마 동방과 눈을 마주칠 수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을 했다.

"왜 안 그랬겠나. 나라도 그랬겠지. 아니 나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을 게야. 자네는 참 대단해.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새내기가 어찌 그리 담이 큰 것인가?"

"제가 담이 크다고요?"

"그럼. 영원한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가 여기에 자네 말고 누가 있겠나?"

"아, 그리 생각하셨어요? 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닌데……."

나는 어리둥절해서 동방을 보고 눈을 껌벅였다.

"저는 소멸 따위는 무섭지 않아요. 어차피 소멸도 지금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되는 거니까 오히려 소멸되면 지금과 어떻게 다를지 매우 궁금한 걸요."

"영원히 자네의 존재가 사라지는 건데 거기에 무엇이 있겠나· 무엇이 있다고 한들 자네는 어차피 아무것도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을 텐데."

"헤, 그까짓 것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럼 뭐 때문에 우울했던 게야?"

동방은 입술을 비죽거리면서 못마땅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사자들 말이에요. 어쩌면 저렇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방 죽을 것처럼 울상을 짓더니 요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시덕거리잖아요."

나는 동방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려고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면서 물었다.

"그것 때문에 우울했었던 게야?"

"네. 그리고 지금 동료 사자들 몇이 퇴출자로 찍혀서 식음을 전폐하는 걸 보면서 자기들이 거기에서 빠졌다고 시시덕거리는 건 좀 잔인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이 먹은 내가 자네 보기가 부끄럽구먼."

"아니, 사자님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자님 말고 저들이 그렇다는 거죠."

나는 순간 동방을 마주보기가 머쓱했다. 그들이나 나나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속물인데 동방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으니 오히려 어린 후배에게 사기를 치는 기분이 들었다.

"저들이고 이들이고 다 똑같지. 나 또한 내가 대상자에서 빠진 걸 확인한 순간 다른 사자 생각하지 않고 기뻤으니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에이, 사자님. 왜 그러세요· 저는 다만 저 사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사자님과 토론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에요."

동방은 불편한 내 마음을 풀어주려는지 얼굴 표정을 바꿔가면서 나를 웃기려고 노력했다.

"동방. 고맙네."

"뭐가요?"

"모든 게. 다."

사자들은 그동안 공포감의 최고의 절정을 체감하고 나서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무뎌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내가 속한 저승세계의 일이나 나의 존재에 대해 애착이 많았던 건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몸과 마음이 나른해져서 매사가 귀찮고 어떤 일에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심리상태는 퇴출자에 속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그동안 뭉쳐있던 긴장감을 일시에 풀어놓는 바람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방에게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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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