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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근

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 국장

미투운동이 거세다. 속속 드러나는 유명인의 성추문에 곪아 터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남자들 서넛만 모이면 예외 없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이야기로 바쁘다. 십여 년 지난 이야기까지 다 들추면 대한민국 성인 남자 중에 떳떳한 사람 한 명도 없다는 성토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한걸음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있다.

가만히 날 들여다본다. 하루에 한두 대 밖에 버스가 오가지 않는 시골에서 팔 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내리 딸만 넷을 낳다가 형님이 태어났다. 아들 하나론 부족하다는 생각에 하나를 더 낳지만, 또 딸이었다. 그가 내 바로 위 누이다. 그다음에 내가 태어났다. 그래도 욕심에 하나 더 낳는 데 그가 내 막내 여동생이다. 쉽게 말해 아들 둘에 딸 여섯이다. 옛날 자식 농사 반타작이라고 했으니 호적에 오르지 못한 형과 누나가 서너쯤 더 있었다는 것을 안다.

남의 집 잔치에 다녀오시거나 오일장이라도 다녀오시면 형과 나를 불러 몰래 사탕이나 떡을 입에 넣어주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래도 고모들은 지금 만나면 기억도 없는 할아버지를 이야기한다. 참 나를 예뻐했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할머니, 아버지, 형님과 겸상을 했다. 비린내 나는 생선이나 계란찜이 식탁에 오르면 내 밥숟가락에 가시를 바른 생선을 올려 주셨다. 밥상 옆, 다리 없는 쟁반에 어머니를 비롯한 제법 아가씨 티가 나는 누나들이 쭉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생선도 계란찜도 없이 김치에 푸성귀만 있는 상이었다.

물! 하고 외치면 옆에 앉아 있던 누나가 눈을 흘기며 "네가 떠다 먹어!" 하지만 누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날선 할머니의 지청구였다. 구시렁거리는 누나를 대신해 어머니나 좀 더 큰 누나가 부엌에서 물을 떠다 주었다. 두살 어린 여동생은 늘 할머니 옆에 앉아 참새처럼 음식을 받아먹는 오빠가 미웠다고 머리가 굵고 난 뒤 이야기한다. 없는 살림이지만 내가 누린 것과 누나들이 누린 것은 달랐다. 누나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 때 나는 대학을 다녔다. 공부 잘한 여동생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도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 나와 형만 늘 귀한 자식이었다.

얼마 전 3.8 여성대회에 지지발언을 부탁받았다. 여자들이 대다수인 그곳에서 난 "축하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남자라는 이유로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차별적인 발언도 했음을 시인했다. 그래서 누나들과 여성 동료들, 그리고 날 아는 모든 여성과 아내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에 미투 이야기는 늘 불편했던 것이 솔직한 심사였다. 이제라도 무심코 던진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시선이 불편했다면 사과하고 싶다.

직장 다니는 아내에게 조용히 물었다. "당신도 직장생활 하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냐고·" 아내는 "그걸 말이라고 해 대한민국에서 직장 다니는 여자 중에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하고 되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치명적인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기억 못 하는 그 시간 속에 누구는 응어리를 갖고 살 수 있음을 안다.

내가 가진 것이 다 내 노력이 아니듯, 내 사고의 반 또한 모두 내 것이 아니다. 빌려오거나 무의식적인 학습으로 내 것이 되었다. 수십 년 전에 본 피해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는 한 여성의 모습에서 그간의 삶을 반추한다. 난 떳떳할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날 교정한다. 'Me too,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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