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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무대 위 꾸밈없이 순하게 늙은 은발의 남자, 어색한 몸짓이 수줍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곧 마디 굵은 대나무 통에서 뽑아 올린 듯이 회오리쳐 나오는 짙은 회한의 음색이 관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합니다. 지난 주말, 가수 최백호의 '청춘콘서트 회귀(回歸)'를 관람했지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는 '봄날을 간다.'를 부르고 나서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던 노래였다고 술회하죠. 그 말을 듣자마자, 봄 햇살에 살구꽃 화사한 어느 시골 툇마루에서 흥얼거리듯 노래하는 중년의 여인이 정지된 한 컷의 사진처럼 각인되더군요. '봄날은 간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흔히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의 의미로 다가오지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봄이 아닌, 봄날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어느 하루의 봄날이 그만큼 찰나의 시간처럼 짧기 때문이 아닐까요.

봄날은 참으로 설레듯 아름답습니다. 그런 봄날의 정점에 슬픈 마음이 가만히 밀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죠. 그 해답을 가수 최백호는 이어지는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서 적절하게 풀어냅니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가사의 내용을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실연의 달콤함'이 아닌 '실연의 아픔'이라고 표현해야 맞잖아요. 실연(失戀)이 어떻게 달콤할 수 있을까요. 젊은 한 때, 실연의 상처로 가슴 아팠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랫말은 중년의 실연은 그마저도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정의하죠. 사실 실연의 이면에는 달달한 사랑이 아직도 숨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설렐 나이가 아니라 잃어버렸다고 여기지만, 사실 내 가슴에 아련하게 살아있는 겁니다. 화사한 봄날이 어쩐지 슬퍼지는 이유와 실연조차도 달콤한 감성이 그래서 절묘하게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는 것은 아닐까요. 노래는 다시'비어있는 내 가슴과 잃어버린 것에'대하여로 시선을 이끕니다.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나무처럼 몸을 비워냅니다. 팽팽했던 피부는 주름이 지고, 두터운 살집 대신 얇은 가죽만 남게 됩니다. 비워진 것이지요. 두터운 나무껍질이 나무가 겪어내는 고난의 무늬라면, 사람에게는 주름이 그것과 닮았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일 년이 지나면 하나씩 층을 이뤄 바깥쪽으로 밀려납니다. 그 내부에는 젊은 세대를 보호하면서 말이죠. 오래된 나무는 속을 비웁니다. 그것처럼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

- 곽재구의 <포구기행> 中

점차 노년의 시절로 접어든다 해도, 잃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빈 공간을 채워오는 것이 있는 것이 삶입니다. 나이가 들면 몸과 마음에 어려움이 생기지만, 한편 더 좋아지는 부분이 있죠. 사람의 감성이나 사회성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집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지혜라며 귀중한 자질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바로 연륜에서 오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죠.

공연을 보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슬몃 봄의 훈풍이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보고 가더군요. 과연 나의 삶에는 이토록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봄이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알 수 없었던 역설적 시어들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이 나이 듦의 아름다움이 새삼 따뜻이 물결 져 가슴을 적시는 봄밤이었어요. 가수 최백호의 늙고 오래된 노래들을 듣고 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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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