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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며칠 전 친분이 있는 어느 여인의 전화를 받고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눈물로 하소연을 해오는 바람에 적잖이 놀라웠다. 평소 명랑하고 온순한 성품의 그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녀의 하소연인즉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이즈막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떨어뜨리는 것은 다반사고 심지어는 사소한 일로 트집 잡고 골탕까지 먹인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자 인간관계만큼 힘든 게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무척 친분이 두터웠던 두 사람이다. 그녀가 있는 곳엔 항상 그녀의 친구도 그림자처럼 함께 했었다. 그런 두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로 관계에 금이 갔을까 싶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종전보다 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으며 그동안의 마음 고초를 털어놓는다.

그녀의 친구는 걸핏하면 자신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곤 했다고 한다. 어려서 화재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그녀 친구는 몇 번의 성형 수술을 감행했지만 화인(火印)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항상 얼굴 한 쪽을 긴 머리로 가리고 다니는 처지였다.

이런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 탓인지 그녀를 곤경에 빠트리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고 했다. 어느 사석에서 자리에 없는 그녀를 그 친구는 헐뜯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들과 혼담이 오가는 사돈 될 사람이 있었던 자리였다. 그녀는 친구의 이 험담으로 아들 혼사마저 와해 됐다고 하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1944년 발표한 장 폴 사르트르 작품이 문득 생각났다. 드라마 『닫힌 문』 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엔 두 여자와 한 남자가 등장 한다. 이 들은 각자 죽은 뒤 밀폐 된 방안에서 만난다. 그들은 생전에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으므로 흔히 생각하는 심한 고통에 시달릴 거라 예상한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오랜 시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세 사람은 각 자가 서로에게 불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내 남자는 자신들이 더 이상 지옥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미 지옥에 와 있기 때문이다. 지옥의 '펄펄 끓는 유황불, 용광로 같은 장작불, 사람 굽는 석쇠'의 고통을 기대했던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 게 인상적이다. "석쇠는 필요 없어. 타인이 곧 지옥이야".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이 윤택해지는 관계만큼 이상적인 대인관계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으로 인하여 스트레스 받고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면 이는 분명 좋은 인연은 아니다. '닫힌 문'의 내용대로 타인이 지옥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위해주고 신뢰할 친구 관계가 이렇듯 지옥의 석쇠를 연상케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마음의 규각(圭角)에 의해서이다.

인간은 누구나 규각(圭角)이 많은 존재이다. 마음의 규각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과도 같다. 이는 교만, 욕심, 시기, 질투, 열등감 등을 유발시키는 원인도 되기에 부단한 자신의 수양(修養)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엔 이 규각이 둥글어져 원만해지는 게 정석 아니던가. 그녀의 친구는 질투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우정을 배신한 악의에 찬 말 한마디로 남의 혼사마저 깨트렸다. 또한 우정도 잃었다.

이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사람을 단박에 해코지 하는 것은 흉기가 아니라 악의라는 것을 새삼 깨우친다. 무심코 내뱉은 가시돋힌 말 한마디에도 등을 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친구 사이임에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 하려면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 저수지 둑이 홍수에만 무너지는 게 아니잖는가. 작은 쥐구멍에도 충분히 둑은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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