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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후끈했던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니, 매서운 찬바람이 코끝을 아리게 합니다. 입춘(立春) 절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마음은 한겨울 벌판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음까지 데워지는 따뜻한 봄은 언제 오는 것일까요.

어느 시인이 춘삼월, 봄이 오고 있는 거리를 산책합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두터운 외투와 목도리로 온 몸을 감싼 채 걷다가, 문득 바람이 몰아치는 다리 위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발견하죠.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을 벌리고, 목에 무언가를 걸고 있는 겁니다. 꽃샘추위로 떨고 있는 두 손 아래의 작은 깡통에는 몇 푼의 동전만 있을 뿐이었어요. 목에 걸고 있는 팻말에는 간단한 글귀가 적혀 있었죠.

'저는 태어나면서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저를 불쌍하게 여기신다면 한 푼이라도 보태주십시오.'

걸인의 글을 다 읽고 난 시인은 팻말 뒷면에 다시 어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걸인에게 "아마 지금보다는 수입이 더 많을 것입니다."라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시인은 여전히 다리 위에서 구걸하고 있는 장님을 또 만나게 됩니다. 시인은 넌지시 물었어요.

"혹시 수입이 더 좋아졌나요?"

그 목소리를 기억한 걸인은 시인의 소맷자락을 붙들면서 외쳤죠.

"선생님이 글을 적어주신 후, 벌이가 몇 배 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이기에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요?"

시인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팻말의 글을 읽어주었죠.

"지금 당신이 지나고 있는 이 다리에도 따뜻한 봄이 왔지만, 저는 그 봄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까요. 이것이 문학이 가지고 있는 울림인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면, 시선의 변화인 겁니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움직이거든요. 걸인이 지내왔던 공간이나, 시인이 산책했던 거리는 겹쳐집니다. 역시 똑같이 봄이 왔을 것입니다. 같은 봄이라도 시인의 눈에 온 봄과 걸인의 봄은 차이가 있는 것이죠. 삶이란 늘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이 함께 붙어 흘러갑니다.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휘슬러 때문에 갑자기 기상이변이 생겨 안개가 등장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런던의 안개는 늘 영국인들의 일상이었기에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죠.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못한 그것을 휘슬러는 마음으로 감지한 것입니다.

안개 자욱한 몽환적 색조를 그려낸 휘슬러의 작품 <녹턴>은 런던을 멋진 안개의 도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새로 구입한 고급 외제차를 시승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산차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워낙 유명한 차종이라서 묘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의외로 소음이 심했어요. 알고 보니 경유를 사용하는 차더군요. 그때 은근히 지인은 자신의 차가 어떠냐고 의견을 묻더군요. 그래서 다른 부분은 다 좋은데, 소음이 좀 있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죠. 그랬더니 지인은 씩 웃더니 이렇게 말을 해요. "그것이 이 차의 매력입니다. 이 차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이 소리를 소음(騷音)이라고 하지 않고 사운드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만약 내가 새로 구입한 차량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면, 심각한 결함이라며 당장 A/S센터로 달려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결함이 그에게는 장점으로 승화된 거죠. 엔진소리를 '사운드(sound)'라고 표현하니, 마치 음악소리 같다는 의미로 들렸지요. 한낱 엔진의 소음을 음악소리로 느끼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시야를 가려 불편하게만 취급되던 안개가, 런던을 매혹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킨 이유와 닮지 않았나요?

누구에게나 같은 봄이 오건만,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인(詩人)의 시선이 결국 긍정의 힘인 거죠. 우리의 삶에서 공존하는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의 시선 중 어떤 시선으로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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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