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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영하의 매서운 날씨가 연일 지속되고 있다. 추운 날씨에 꽁꽁 동여매고 출근 준비하는 아침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잘 지내고 있니, 얼굴도 잊어버리겠다. 한번 들려라"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연락도 않는 딸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에 몸이 더 움츠러드는 아침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하루 종일 귓가를 맴돌았다. 퇴근하자마자 어머니께 들렀다. 어머니는 간단한 찬거리로 혼자 식사를 하시려 던 참이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방문한 딸이 무척이나 반가우신가 보다. "혼자 먹기 싫었는데 잘 왔다고."하시며 금세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오셨다. 모처럼 어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긴 음식으로 배불리 먹었다. 포만감으로 슬슬 졸음까지 밀려든다. 먹은 것을정리하려 일어나니, 피곤할 텐데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어머니에게 난,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인가 보다. "너 같은 딸 하나 키워 봐라."라고 하시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조금은 알 듯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끝없는 내리사랑이란 것을.

주방 가운데 정성스레 정화수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눈에 익은 사발(沙鉢)이다. 어머니는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하시고 우물로 가셨다. 우물에 떠있는 티끌을 휘휘 저어 맑은 물을 그릇에 담아 부뚜막과 장독대에 올려놓으신 후 치성을 올렸다. 자식들의 무탈함과 행복을 빌었으리라. 잠시 옛 생각에 잠기다가, 올해 해맞이 다녀온 일이 떠오른다.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처음 맞는 "해맞이"였다.

새해 첫날, "2018년"이란 도화지를 무슨 그림으로 채울까 부푼 마음을 갖고 대청호로 향했었다. 태양이 솟아오기를 기다리며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환희에 차 있었다. 마치 분만실 밖에서 아이의 탄생을 애타게 기다리다, "으앙~"하는 첫 울음소리에 환호하는 가족의 표정과도 같았다. 이른 새벽, 해맞이 인파는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일출의 순간을 놓칠 새라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 무리 속에 나도 서있었다. 힘찬 기운을 내뿜고 우뚝 일어선 둥근 해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 듯, 환한 빛을 쏟아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함성도 잠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엄숙함이 흘러나왔다. 올해, 아들은 또래들보다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한다. 건강하고 늠름한 사나이로 앞으로의 삶을 진중하게 펼쳐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아이는 좀 더 폭넓은 공부를 위해 유학(留學)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 가족의 꿈과 희망을 싣고 항해의 돛을 올린 2018호가 무사히 정착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나도 합장을 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부뚜막과 장독대에 정화수 올려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을 드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었다. 한두 명도 아닌 일곱 자식을 위해 늘 가슴조리시던 어머니!

"얘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군고구마 먹어라."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정신이 퍼뜩 든다. 늘 자식 걱정만 하시고 맛있는 건 자식 입에 넣어주고 싶은 어머니! 어느새 바리바리 보따리를 싸 놓으셨다. 깨강정, 먹기 쉽게 찐 마늘, 갓 무친 겉절이, 고구마 등.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이, 옆에 놓인 여섯 보따리들이 말해주고 있다. 자식 걱정만하며 살게 아니라, 어머니께 자주 연락드리고 얼굴 보여 드려야지 다짐을 해본다. 어머니는 오늘도 정화수 앞에 서서 자식의 행복을 빌었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홉 식구가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넣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겹쳐진다. 어머니의 큰 사랑이 가슴을 포근하게 덮어와 추위를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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