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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완

충북문인협회 회장

산을 좋아하는 나는 설악산에서 새해를 맞았다. 새벽 3시.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도 오색약수 입구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등산로 입구 문이 열리자 해드램프 행렬이 줄을 잇고 나도 앞서가는 사람의 등산화 뒷굽을 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설악산은 일정 때문에 대부분 야간산행을 하게 된다. 야간산행은 잠을 설치게 되는데다 겨울철엔 추위까지 겹쳐 단단히 각오를 하지 않고는 견뎌내기 어렵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넉넉한 산의 품에 안기다 보면 이내 어려움은 잊혀지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산에 오르는 길은 삶의 길과 닮았다. 사람은 저마다 목적이 있어 삶을 영위하듯이 또한 사람마다 목적이 있어 산에 오른다.

산행의 모습도 제각기 다르다. 경쟁하듯 앞서만 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유를 갖고 천천히 오르는 사람이 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좋은 길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남을 위해 양보하고 험한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건네며 베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 사람은 모른 채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

산이 그렇듯 산에 오르는 사람은 넉넉한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정상정복의 진정한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던가.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하듯이 자기의 삶에 열정을 쏟아 붓고 그것이 숙성되어 열매가 맺기까지 진득하게 인내할 줄 알아야 진짜 값진 열매를 얻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희미한 불빛에 의지한 채 4시간여 오르다보니 두텁게 끼워 입고 무장한 몸속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헉헉대며 내뿜은 입김은 눈썹과 마스크에 고드름을 맺게 한다. 오를수록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쌓인 눈의 두께는 두꺼워져 이젠 허리 위까지 차올랐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는 되는 것 같다. 가파랐던 길이 완만해지더니 이내 정상을 향한 마지막 돌계단 길을 오른다. 이젠 다왔다는 안도감과 누적된 피로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어쩌면 겨울산은 일상의 편안함을 버리는 고행인지 모른다.

새벽 7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스무 번 넘게 오르는 대청봉이지만 오를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천혜의 얼굴을 가진 설악의 대청봉은 계절에 따라 일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얼굴이 바뀐다. 정상에 선 나는 마음속의 둥근 해를 향해 기도했다. 우선 올해는 내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좋은 내 일과 멋진 미래는 순간순간 현실에 충실해야 되기 때문이다. 또 희망을 갖고 변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기도했다. 날마다 새로운 희망을 갖고 오감을 활짝 열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나 스스로 즐거운 일터와 일상을 만들어 보람된 나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웃는 일이 많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최근 수년 동안 웃음을 잃어버린 채 보냈으니 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국가를 멋지게 이끌 지도자가 선택되고 경제가 활성화되어 윤택한 생활 속에 즐거운 일상이 이어지길 바래서 이다. 마지막으로 연륜에 맞게 인내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인생에 참맛을 알려면 조용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되기 때문이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보니 추위가 엄습해 왔다. 이젠 하산길, 아직도 어둠은 걷히지 않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산세를 본다. 공룡의 등뼈를 닮았다는 공룡능선, 용의 형상을 한 용화장성, 웅장함과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울산바위,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빙판에 미끄러 넘어지고 돌부리에 채이다 보니 어둠이 걷힐 무렵 봉정암에 도착했다.

사람과 산이 만나 마음을 열고 부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곳,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배려가 있는 곳, 속세를 떠나 마음의 평화와 안위를 찾을 수 있는 곳, 바로 산사다. 특히 국내 사찰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봉정암은 하늘 가까이서 그 역할이 남다르다. 지친 등산객에게 안식을 주고 숨쉬는 모든 생명에 대한 배려도 특별하다. 그들의 땅 자연에서 순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봉정암에서 백담사로 가는 길은 급경사가 많은데다 얼어붙어 등산화에 아이젠을 부착했어도 여러번 엉덩방아를 쪄야했다. 계곡의 칼바람과 눈보라도 발걸음을 어렵게 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6시간, 천하를 얻었다 초라하게 몰락했던 전직 대통령이 귀양살이를 했던 백담사에 섰다. 거스르지 않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 사찰, 봄, 여름, 가을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연으로 찾던 사찰이 빈 바람만 가득하다.

불멸과 소멸을 아우르는 설악의 산세와 어우러져 그 특유의 풍경을 연출한다. 용대리 종점까지 나는 더 걷기로 했다. 보람 있는 신년 산행을 마쳤다는 쾌감에 두 다리는 힘이 불끈 솟고 가슴엔 환희로 가득 차 오른다. 자신감도 뜨거운 쾌감도 솟구친다. 우회할 필요도 돌아볼 필요도 없이 묵묵히 걸어가면 자연처럼 웅장하고 묵직한 삶이 기다리지 않을까.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그렇게 더해간다.

설악산은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내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면서 눈길을 오르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힘차게 딛고 오르라는 묵시록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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