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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평화의 소망 담긴 '청주읍성 순례길' 여정

청주제일교회·육거리시장·중앙공원 등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의 아픔·고통 서려
"순교자들의 발자취 담긴 거룩한 땅"

  • 웹출고시간2018.01.01 21:07:33
  • 최종수정2018.01.01 21:07:33

청주 서운동성당 신자들이 조선시대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있었던 청주 중앙공원에서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는 성가를 부르고 있다.

ⓒ 김태훈기자
[충북일보] 새해에는 누구나 두 손을 맞잡는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 희망을 품기 위한 기도다.

대통령 탄핵부터 북핵실험, 사드배치 논란까지 지난해는 유독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 갈등은 화합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으로 자라났다.

200여 년전 이 땅에도 평화를 바라는 작은 외침이 있었다. 죽음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의 기도였다.

청주 곳곳에는 이들의 흔적이 서린 '청주읍성 순례길'이 있다. 마침 올해는 천주교 청주교구 설립 60주년이다. 성지 관할 성당인 청주 서운동성당 신자 55명과 함께 순례길을 따라 걸었다.

천주교인들의 아픔 서린 청주읍성

청주시 상당구 일원에 있는 청주읍성 순례길은 서운동성당을 출발지로 읍성의 4대문인 남문(청남문)과 서문(청추문), 북문(현무문), 동문(벽인문)을 돌아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4㎞ 구간이다.

삼국사기 등 기록에 따르면 청주읍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해 청주 일대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및 행정의 기능을 담당하던 석성(石城)이다.

조선시대에는 청주 감영과 병영이 있었으며 1801년(순조 1년)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이 있던 신유박해 시절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이 고문과 박해를 당했던 곳이다.

지난 1910년 일제강점기 도시정비사업으로 읍성이 훼손된 후 현재 그 터만 남아있지만 읍성 안팎에는 천주교인들의 신앙 증거터와 순교터가 남아있다.

서운동성당은 지난해 초부터 대대적인 성지 정비를 실시해 이달 중 천주교 전국성지순례사목위원회의 정식 순교지 등재를 앞두고 있다.

서준영 순교자현양회 해설사가 지난 2002년 청주 중앙공원에 세워진 순교자현양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태훈기자
본격적인 읍성 순례에 앞서 순례자들은 성당 앞 마당에서 시작 성가와 기도를 드렸다.

'환난과 핍박 중에서 순교로 믿음 지켰네'로 시작하는 성가에는 순교자들의 뜻을 기리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의 메시지가 담겼다.

이 시간 순례자들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저마다의 기도를 품고 여정의 준비를 마쳤다.

혹독한 박해가 있었던 육거리 시장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청주 육거리시장 초입에 있는 청주 진영 순교지다.

이곳은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청주제일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순교자의 흔적이라곤 교회 한편 '청주진영터'라고 쓰인 작은 기념비가 전부다.

그러나 지난 1457년(선조 3년)에는 조선의 군대가 주둔하던 충청도의 다섯 개 진영 중 하나인 청주진영이 있던 자리다.

1866년 참혹했던 병인박해 이후 청주는 물론 진천, 보은, 옥천, 영동 등에 거주하던 천주교 신자들의 체포를 주도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진천 지장골(현 진천읍 진암리)출신의 복자 오반지 바오로가 청주진영으로 압송돼 갖은 유혹과 문초를 받고 3월 27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믿음을 대가로 붙잡힌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은 다 이곳으로 끌려왔습니다. 청주는 순교자들의 용덕과 아픔이 서려있는 땅이죠. 오반지 바오로를 포함해 하느님의 종 김준기 안드레아, 최용운 암브로시오 등 수많은 교인들이 순교한 곳도 바로 여기였어요" 서준영 순교자현양회 해설사의 설명이다. 지난 4월 진천에서 발굴된 바오로의 유해가 서운동성당을 포함한 청주교구 각 성당에 봉안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진 형벌에도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던 바오로의 강직한 성품을 기억한 채 청주 남문 밖 장터 순교지로 향했다.

청주 서운동성당 신자 55명이 충청지역 천주교인들의 아픔이 서린 청주읍성 순례길을 걷고 있다.

ⓒ 김태훈기자
육거리 시장 한복판에 있는 장터 순교지에는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였다.

신유박해 막바지인 1801년 12월 22일 장날도 그랬을 것이다. 그날 남문 밖 장터에서는 엄동설한의 날씨에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가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는 신유박해 때 체포되기 전까지 천주교 서적을 필사 및 배포해 평화의 뜻을 알리는 데 온 힘을 바친 순교자다. 인쇄 시설이 없던 당시에는 필사가 최선의 방법이자 유일한 방법이었다.

곤장을 맞아 참혹한 몰골로 장터에 끌려가 군중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그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하늘에 바쳤다.

순교자들의 '믿음의 반석' 세워진 중앙공원

왁자지껄했던 시장의 분위기가 사그러들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인 청주 중앙공원이 나타났다.

길게 뻗은 망선루와 척화비는 이곳이 옛 조선의 충청 병마절도사 영문(충청병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충청병영터에서는 1799년 당진 출신 복자 원시보 야고보가 울면서 따라오는 부인과 자식, 벗들을 뿌리치고 곤장과 주뢰형 등 형벌을 당하다가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교회 기록에 따르면 당시 그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50가족이 믿음을 가졌다고 전한다. 지난 2014년 방한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원시보의 거룩한 삶을 기려 '복자'로 시복했다.

복자 배관겸도 '온몸의 살이 떨어져나가고 헤지고 팔다리가 하나씩 부러져 뼈가 드러나는' 고통을 영웅적 인내로 참아내고 1800년 1월 7일 숨을 거뒀다.

이들을 기념하고자 청주교구는 신유박해 200주년 이듬해인 지난 2002년 공원 한편에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현양비를 세웠다. 우직하게 선 현양비가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을 닮아서일까.

"매번 방문할 때마다 순교자들이 당했던 혹독한 고초가 느껴져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감사함을 느껴요.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은 옛 순교자들의 숭고한 용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현양비 앞에선 순례자 김재인(66)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성안길 근처 북문 밖 장대터였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젊은이들의 고함이 들렸다. 하지만 순례자들의 먹먹해진 가슴을 달래기엔 부족해보였다.

북문 밖 장대는 장수들이 전쟁이나 훈련 시 군사들을 통솔하던 곳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기왓장 하나, 벽돌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장대터'라고 쓰인 표석만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진천 배티 교우촌(현 진천군 백곡면)에서 활동하던 복자 장 토마스가 청주 포교들에게 체포된 후 이곳 장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만 번 죽어도 천주교를 배반 할 수 없다'는 그의 마지막 증언은 장대터에 영원히 남아있다.

순례 발길은 동문 옆 청주옥터로 향했다.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이 보이는 곳에 이를 기념한 표지석이 있다. 터의 정확한 위치는 청주 상당구 상당로 55로 현 롯데영플라자 부지다. 1866년 오반지 바오로는 이곳에서 옥의 관리들이 보낸 기생의 유혹에도 신앙을 굳게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오사룡과 윤 바오로, 이영준 아우구스티노를 포함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했다.

옥터를 끝으로 순례자들은 다시 성당에 모였다. 묵상의 길이었다.

"청주읍성 순례길은 옛 순교자들의 신앙의 발자취이자 순교자들의 향기를 전해 느낄 수 있는 거룩한 땅입니다. 세월이 지나며 환경이 변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뜻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순례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바랍니다" 김웅렬 주임신부는 순례를 마친 이들에게 축복을 기원했다.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순례자들은 마무리 기도를 위해 두 손을 맞잡았다. 차디찬 날씨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선한 미소가 가득했다. 꽁꽁 언 손가락 사이사이 붉은 빛이 감돌았다.

/ 강병조기자

◇순례자들의 새해 소망

이상묘(52)씨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자녀가 있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고 싶지만 사회복지사의 월급이나 처우가 열악해 고심하고 있다. 올해는 좋은 일자리가 생겨 취업을 했으면 좋겠다"

정영숙(61)씨 "지난해는 도내 곳곳 도로 보수공사가 눈에 많이 띄었다. 도로 공사도 좋지만 지자체에서는 어려운 아이들이나 소외계층을 위해 예산을 많이 사용했으면 한다"

박영규(65)씨 "올해는 6·13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지선에서 능력있는 기관장들이 많이 뽑혀 지난해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추스리고 화합을 위해 애써주길 바란다"

조순성(57)씨 "지난해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불행한 소식들이 많았다. 올해에는 국민들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특히 정부의 복지정책이 강화돼 진정한 복지사회가 실현됐으면 한다"

김태섭(11)군 "놀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학교 끝나고 학원을 다니느라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게임할 시간이 부족하다. 올해는 공부 말고도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다"

최낙권(79)씨 "지난해에는 탄핵정국과 촛불집회를 겪으며 국민들간의 이념 대립이 심했다. 보수와 진보 뿐 아니라 기성세대와 젊은세대간 갈등의 골도 깊어진 것 같다. 올해는 서로의 상처가 아물고 평화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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