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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빗발치던 총탄도 자유에 대한 갈망을 저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쓰러지던 북한병사의 상한 몸을 제일 먼저 받아 안아준 것은 두텁게 깔린 낙엽이었죠.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마른 낙엽의 향기는 일순 그를 위무하지 않았을까요.

 지난 주말, 판문점 근처에서 탈북 하던 북한병사가 쓰러졌던 자리를 가늠해 보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 긴박했던 시간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임진강은 유유히 흐릅니다. 눈 덮인 비무장지대(DMZ))의 산과 들은 그저 무심한 듯 평화롭습니다. 칼바람을 뚫고 판문점 곳곳을 다니다보니, 몸이 꽁꽁 얼었습니다. 훈훈한 버스에 오르니 안온함이 몰려옵니다. 멀리 북녘 땅이 아스라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졸음이 스르르 밀려오네요.

 '뽀드득 뽀드득'

 소복하게 눈 쌓인 목로(木路)를 걸으니 코가 아립니다. 상큼한 추위가 실감나는 입니다. 2년 전, 남북이 전격적으로 합의해 1년여 공사기간을 거쳐 천연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나무 길을 완성한 겁니다. 지뢰가 묻혔던 땅 위로 낸 생명 길 같았습니다. 철책과 인접한 도시를 중심으로 출구를 만들었죠. 60년 동안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지구 유일의 비경(秘境)이 열리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온 겁니다. 멀리 북쪽 감시탑과 확성기조차 역사의 기념물처럼 보이죠. 새벽안개를 가슴에 품은 임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뿌연 안개 속으로 길을 낸 목로(木路)는 끝이 보이지 않네요. 아아, 그 신비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버립니다. 북쪽에서도 일단의 관광객이 걸어오네요. 곳곳에 마련된 조그만 휴식 공간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서 각국의 언어들이 섞이니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아 괜히 뿌듯합니다. 이따금 들려오는 북한의 사투리도 반갑네요. 아프리카 평원의 영양처럼 고라니 몇 마리가 목로 아래로 달려갑니다. 강에서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자, 부리가 빨간 물새가 재빠르게 물고기를 낚아채고 하늘로 오릅니다. 하늘을 나는 새떼들은 햇살을 헹구어 대지로 마구 뿌려댑니다. 멧돼지 가족이 줄지어 어디론가 길을 떠나고, 수천의 재두루미 군락은 목을 축입니다. 이 놀라운 서사의 풍경에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탄사를 연발하죠. 멀리 한국산 호랑이의 우렁찬 포효소리도 이따금 들립니다. 늑대도 화답하듯 긴 울음소리를 냅니다. 남쪽에서 간신히 명맥만 잇고 있는 반달가슴곰도 이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네요. 깜찍한 외모의 담비는 나무 위에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쓰러진 고목 아래 포식자 삵도 느긋하게 먹이를 뜯어 먹고 있습니다.

 '덜커덩 덜커덩'

 흔들리는 차량에서 문득 눈을 뜨니, 행복한 꿈이었군요. 너무도 달콤하고 생생하여 아쉽고 허망할 뿐입니다.

 꿈처럼 이 이뤄지면, 이제 대포를 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남과 북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평화공원은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완충지대가 되겠죠. 이곳은 대한민국만의 공원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평화의 공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벅찬 상상을 해봅니다.

 버스가 강변북로를 접어들면서 하늘공원이 보입니다. 한 작가의 글이 꿈처럼 마음에 스며듭니다.

 '서울 시민들의 온갖 오물을 말없이 받아들이던 곳,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작지만 그 잉여를 나눠주던 곳, 세상에서 가장 더러웠던 곳, 갖은 멸시를 받았던 그 땅이 썩고 썩어서 기름진 숲 하늘공원으로 변한 모습을 보자 부활이란 말이 그렇게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공지영의 산문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中

 버스에서 꿈꿨던 은 원래 날카로운 쇠붙이들만이 서로의 가슴을 겨누던 곳이었죠. 한때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룬 저주의 땅이었으니까요. 무려 60여 년 동안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잊혀진 땅이었어요. 그러나 그 미답의 땅은 그만큼의 천진함으로, 머잖아 우리에게 꿈처럼 천혜의 선물로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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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