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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띠띠띠뛰~~~'

자정을 알리는 소리. 12월이다.

수영아!

오늘은 어제보다, 아니 어젯달보다 훨씬 춥다네. 율곡 이이와 생일이 같다던 너는 이 추위가 뭔지 잘 알거야. 또 감기가 시작되겠구나.

'리러 리러'를 입에 달고 다니던 형아를 쫓아 늘 떼쓰던 아기였는데.

2004년이었지. 배밀이만 하다가 벌떡 일어서 걷던 김수영. 나이만 다섯 살이던 너와 여섯 살 형아를 데리고 서울에 갔지. 교보문고에 들렀고, 글을 깨쳐 엄마가 사다주는 메이플스토리에 푹 빠져있던 형아는 아직 못본 신작을 잡고는 서점 바닥에 그냥 주저앉았지.

기지도 않고 벌떡 일어서 걷던 너는, 서울에서는 대부분 아빠 품에 안겨 다녔어. 아마도 형아가 지 책만 봤기 때문일거야. 인문학 코너를 오랜만에 둘러보던 아빠 등을 친 김수영. 낮게 "왜~"하고 물었더니, "아빠, 여기 김수영 있어~"라며 낮게 대답했지.

그랬지. 그때 EBS타큐에 여러 문인을 소개하며, 김수영도 소개된 뒤라 '김수영'이 제목에 있는 책 다섯 권을 네가 가리켰어. "아빠, 여기 김수영 있어~"라고 하며, 또다른 너를 그렇게 만났었어.

그런 애기 김수영이 이제 고3 막달이 되었구나.

몇 년 전에 시내 골목에 간판 하나가 새로 걸렸어.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가비찻집. '우리 아들 이름이 가비찻집 간판으로 걸려·'라며 잠시 생각했지만, 아빤 그게 수영이가 애기 때, "아빠, 여기 김수영 있어~" 했던 그 김수영인 줄 알고 있었지.

<풀>의 시인 김수영.

그를 위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낸 가비찻집인데, 작년에 처음 가보고, 올 해 두 번 가봤어. 그 주인이 하는 말, "여기 찾는 손님 대부분은 김수영을 보고 와요. 그런데 <풀>만 알고 오는 손님은 입구에 놓인 <김일성 만세>를 보고는 뭐라고 한마디씩 하고 나가 버려요."라고. 듣다보니, 아들 이름이라 궁금했던 엄마도 한번 다녀간 것 같더라.

지난 23일 수능날. 수능 안보는 수영이랑 늦은 점심을 할아버지와 같이 먹으며 주저리주저리 얘기했는데, 그 중에 아빠가 했던 말 기억하니· "아빠는 오늘 6.0 정도의 강진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고 했던 얘기.

그게 먹은맘은 아니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야. 대학 진학을 두고 스무살의 삶을 옥죄는 이 세상이 아빠는 좀 미워. 천재지변에 결정한 조치는 반겼지만, 시험을 보다 지진 땜에 시험장을 나가는 학생은 수포자로 간주해 퇴실조치하겠다는 그 대안이 더욱 밉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이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수영이가 아빠 등을 두드리며, "아빠, 여기 김수영 있어~" 했던 그 시인이 <풀>을 눕혔을까· 바람이었을까· 봤을까 바람을· 생각했겠지. 고민했겠지. 풀보다 먼저 울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풀뿌리마저 눕혔을지 모르지만, 수영아. 답은 김수영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내고 이어가서 또 하나 풀을 보며 내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빠가 수영이 나이였을 때가 30년 전이네.

입학 사흘 전, 할아버지께서 알려준 아빠 이름 석 자만 그리고 학교에 갔어. 학교 가서 한글을 배웠고, 아빠 글씨가 지독한 추상화라 글씨 잘 쓰는 여학생과 짝도 되어 보았지. 나중에는 펜글씨를 아빠 혼자 연습했었어. 하지만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30년이 지난 지금, 내 아이 김수영이 여전히 대입 앞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리고 미안하다, 하염없이. 그 때보다 더한 대입이라는 벽이 내 아이들에게 다시 올 것을 알았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한 아빠가 참 못났다.

날 춥다.

따숩게 입고 감기 조심해.

아빠가.

김수영에게.

P.S. <풀>의 시인 김수영과 김수영 시인의 <풀>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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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