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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2.03 15:54:01
  • 최종수정2017.12.03 17:29:47

지명순

U1대학교 교수

[충북일보] 어릴 적 나는 먹성 좋은 아이였다. 정확히 말해 아무리 아파도 밥을 굶은 적이 없고 주는 음식은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적어도 음식 때문에 부모님 속 썩인 적 없이 컸다.

그렇게 아무거나 잘 먹으며 우량아로 자라는 동안 유일하게 먹지 않는 음식이 있었다. 그건 노란 호박죽이었다. 혀에서 느껴지는 물컹물컹한 느낌과 특유의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호박죽을 자주 끓이는 겨울도 싫었다.

출산 후 친정어머니께서 붓기를 빼야 한다며 호박 즙을 해주셨다.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 맛이라도 봐야겠다고 한 모금 마시니 달달하니 먹을 만했다. 이후로 호박죽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겨울이면 늙은 호박을 거실에 여러 덩이 들여놓고 푸근한 노란색을 감상하면서 겨우내 끓여 먹는다.

호박죽

ⓒ 이효선
나를 닮아서 일까. 아들이 호박죽을 싫어했다. 아이의 영양과 성장을 위해 호박죽을 먹이고 싶어 끓이는 방법을 변형했다. 양파에 우유, 밤 가루, 호두를 더하고 여기에 꿀까지 한 수저 섞으니 달콤한 맛 때문인지 아들이 참 잘 먹었다. 이제는 산처럼 키가 커진 아들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단호박 스프보다 집에서 만든 호박죽이 더 맛있어요."라면서 호박죽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래, 호박껍질만 벗겨준다면..."

아들과 둘이서 호박손질을 시작했다. 늙은 호박은 꼭지 쪽을 6각형으로 잘라 뚜껑을 도려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안에 있는 씨와 속을 파냈다. 깨끗이 속을 파낸 늙은 호박은 감자 칼로 껍질을 제거한다.

"호박껍질이 단단해서 잘 안까지네요" "한꺼번에 하지 말고 조금씩 벗겨야해~!" 커다란 손으로 호박껍질을 벗긴다. 껍질 벗긴 노란 속살을 듬성듬성 잘라 압력솥에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은 후 푹 익혔다.

양파를 채 썰어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타지 않게 볶는다. 푹 익은 늙은 호박은 도깨비 방망이로 곱게 갈고 양파와 잣, 밤 가루을 섞어 갈아준다. 여기에 우유를 넣고 소금으로 간해 한 번 더 끓이면 호박죽이 완성이다. 꿀은 먹을 때 기호에 따라 섞어준다.

늙은 호박

ⓒ 이효선
늙은 호박은 겨울철 종합비타민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풍부하게 들어 있는 수분과 칼륨은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에 뛰어나 산모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타민, 미네랄 등의 영양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 흡수에 뛰어나며 맛은 물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식품이다. 노란색의 베타카로틴은 항암작용을 하는 성분으로 인체의 면역력을 증가시켜 감기나 비염, 편도염 등 염증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늙은 호박을 통째로 보관하려면 얼지 않는 온도의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둔다. 자리를 자꾸 옮기면 잘 썩게 된다. 한 번에 다 먹기엔 너무 크다. 이때는 껍질을 벗기고 말리거나 삶아서 먹을 만큼씩 나눠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

호박죽을 쑤는 것을 지켜보는 딸내미가 "엄마 난 호박죽보다 호박찰떡이 맛있던데 호박 말린 거 넣고 만든 떡 말야~" 질투심 많은 딸을 위해 냉동실에 있던 찹쌀가루와 울타리 콩, 서리태, 밤, 대추, 호박고지를 꺼냈다.

호박고지

ⓒ 이효선
"딸내미도 엄마를 도와줘요"했더니 앞치마를 치고 나선다. "찹쌀가루가 녹는 동안 울타리콩과 서리태를 삶아~" "어떡해·" "급하니까 압력솥에 물2컵 넣고 설탕 반 컵 섞어서 콩 넣고 삶으면 돼~"

밤은 4등분하고 대추는 씨를 빼서 잘랐다. 호박고지는 물에 살짝 불려 황설탕을 뿌려둔다. 녹은 찹쌀가루에 물을 주어 내리고 준비한 울타리 콩, 서리태, 밤, 대추, 호박고지 재료를 훌훌 섞었다. 주방이 쌀가루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아들과 딸이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

호박고지찰떡

ⓒ 이효선
김이 오른 찜통에 젓은 면보를 깔고 설탕을 뿌린다. 그래야 완성되었을 때 잘 떨어진다. 섞은 재료를 성글게 놓고 30분 찌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떡이 된다. "우아~맛있어 보인다." 딸내미는 신이 나는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설거지도 잘한다. "찰떡은 식은 다음에 썰어야 모양이 좋으니 베란다에다 갔다 놔~."

아들과 딸에게 옆집 할머니, 그 옆집 애기엄마에게 호박죽과 호박고지찰떡을 드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음식 만드는 재미도 좋지만 나누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례로 사과를 한바구니 얻어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아이들과 호박에 얽힌 이야기로 구수하게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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