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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22 13:30:45
  • 최종수정2017.11.22 18:00:12

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고향 청주로 가는 마음은 항상 즐겁고 편안합니다. 서울역 KTX에 오릅니다. 이번에 탑승할 좌석은 유일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중앙 가족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출발역에서는 아무도 자리하지 앉는 가족석에서 호젓하게 여행을 하게 되었죠. 빛처럼 빠르게 달리며 소리 없이 공간을 가르는 열차는 고맙게도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든 산과 들의 풍경을 계속 안겨줍니다. 적멸 직전의 마지막 가을빛 향연이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요.

광명역에 들어서자, 한 가족이 빈 좌석을 채웁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일행입니다. 맞은 편 창가에 앉은 어린 손자는 창 밖 풍경에 몰입하고, 마주 보고 앉은 아버지와 아들은 간간히 담소를 나눕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대화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요즈음 정치권의 적폐 청산에 관한 이야기였죠. 노인인 아버지는 보수적인 관점을 주장한 반면, 젊은 아들은 현 정부의 적폐 수사를 옹호합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혼란에 빠져 적폐라는 미명하에 정치보복을 하는 거지 뭐야. 과거 정권에서 잘못된 것들을 다 헤집어내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정권이 어디 있어?"

"아버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도사리고 있다면 언젠가는 곪아서 생명마저도 위태롭게 되어 있을 수 있어요. 더 곪아 전체로 번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수술을 통해 도려내야 미래가 있는 겁니다. 건강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수술은 불가피한 거죠"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 없는 수준의 염증도 있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지. 불필요한 수술을 하다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왕왕 있지"

두 부자간의 적폐 청산에 관한 토론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때, 창 밖 풍경에 심취해 있던 어린 손자가 두 부자의 대화를 듣다, 나를 슬며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조용히 좀 하세요. 여기 기차 안에 두 분만 계세요? 우리는 지금 그냥 기차타고 여행 하면 되고, 경찰은 나쁜 사람들 잡아오고, 판사들은 그 사람들 죄에 따라 벌주면 되지요"

아, 어린 손자가 명쾌하게 균형을 잡아줍니다. 두 부자는 손자의 말을 듣고 멋쩍게 웃고 맙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문제없다는 논리죠. 정치적인 논리는 배제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밝혀내고, 죄가 있다면 정당하게 벌을 받는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입니다. 차창 밖 맑은 하늘처럼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시선인 겁니다.

이번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서울로 향합니다. 강남 쪽에 지인과의 약속을 잡았으니, 서울역으로 가는 KTX보다는 유용한 까닭이죠.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들어가려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버스 기사가 안내방송을 합니다. 청주와 목천 구간에서 사고가 발생해 그 구간만큼만 국도로 가겠다는 의미죠. 도착하는 시간은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여서 말입니다. 모든 승객들은 친절한 버스기사의 말에 기꺼이 동의를 해주었지요.

고속도로 변의 풍경에 익숙하던 시야에 낯선 국도변의 정경이 신선하게 펼쳐집니다. 풍경이 멀찍이 물러나 있던 고속도로와 다르게 국도에서는 스칠 듯 가까이 다가오는 나무와 집들이 또렷하고 정겹습니다. 소슬한 가을 햇살 아래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어느 집의 주인장과도 눈이 마주칠 거리입니다.

'그대의 온 행복은 순간 속에 찾아라'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中

빠른 속도는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섬세한 정경을 지워버립니다. 반면 느린 걸음은 더 깊고 친근하게 자연과 사람살이의 모습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이제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홀가분한 몸으로 서로의 공간을 즐기겠지요. 잎새 무성하여 보이지 않던 그들의 아름다운 골격을 시린 바람 속에 꿋꿋이 드러낸 모습을 보며, 우리들 또한 의연한 마음을 체득 할 것입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고, 비우면서 단단해지는 세상의 이치, 이것 또한 균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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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