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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16 14:10:21
  • 최종수정2020.03.19 14:35:55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며, 병원 주차장의 흡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나는 아저씨가 있다. 암병동에 입원해 있던 칠순 노모를 간병하기 위하여 매일 저녁 서울에서 청주로 퇴근을 하고, 6인실 병실의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이면 다시 서울로 출근을 하던 분이었다. 담당 주치의여도 병동에서는 환자 상태 이외에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기 마련인데, 가끔 당직일에 병원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말을 붙이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댁은 제주도이고, 아드님은 경기도에서 살며 직장을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미 여러 곳에 암이 전이를 하여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고, 항암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암종인데 통증 조절이 되지 않아 입원해서 한 달 넘게 있는 상황이었다. 낮에는 할머니 혼자 병실에 계셨는데 대부분 잠을 주무시거나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교수님과 회진을 가도 통 질문도 없었고, 내가 혼자 회진을 가도 별다른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간혹 아파서 힘드니 진통제를 달라고 하는 정도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한번 다녀온 나로서는 제주도 사투리가 궁금하기도 해서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보았지만, 제주도 사람들도 사투리 그렇게 안 쓴다는 말을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한 달이 넘으면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통증도 심해져 밤에도 끙끙 앓느라, 아드님은 거의 밤을 세워야했다. 다른 보호자는 온 적이 없어, 교대 좀 하시라고 하면 그냥 웃곤 했다. 할머니가 이제 의식도 없어지고 운명하기 까지 며칠 안남은 상황이 되어서도 이 아드님은 휴가를 내고 내려와 임종을 기다렸다. 한눈에 봐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직장인으로 이렇게 청주와 서울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때까지나 지금이나 이렇게 지극하게 어머니를 돌본 보호자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머니의 암과 죽음에 대하여도 너무도 담담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격을 그리 쉽게 만나지도 못한 것 같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나름 더 챙겨줄 것이 없는지 고민을 했던 것 같지만, 그리 도와주지도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할머니는 임종하였고, 보호자는 이 아드님 한분만이 홀로 자리를 지켰다.

2달쯤 지나고 우편환과 편지가 왔다. 아마 사십구제가 지나서 인 것 같다. 그 할머니의 아드님이 보낸 우편환과 편지였다. 홀로 제주도에 사시던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이 정도의 약간의 돈이 남았는데 그간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며 보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본인의 친어머니는 아니시며, 몇 년 전 어느 단체에서 자매결연 사업으로 고아인 본인과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맺어주었다고 하였다. 그러고 몇 년 안 되어 말기암이 진단되어 이렇게 보내드리게 되었고, 본인은 40년 넘게 가져 보지 못했던 어머니를 몇 년 간이나마 모실 수 있었고, 병원에서 2달여 동안 입원해서 큰 고통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해준 것이 너무나 기쁘고 고맙다고 하였다.

이제 나는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때는 내가 보기에 젊은 아저씨였던 그 아드님의 나이를 이미 넘었을 테지만, 나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많은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고 있지 못함을 본다. 담배를 끊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해가 지난다고 하여 성숙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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