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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의 희망 만들기…4천265km PCT 종단 ③

PCT 종단 시작 121일, 도상거리 2,711km
캘리포니아주 구간 완료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 웹출고시간2017.10.26 18:06:06
  • 최종수정2017.10.26 18:06:28

북부캘리포니아에 입성했지만 아직도 눈은 길은 다덮고 있다. 눈에 묻힌 호수가 인상적이다.

[충북일보] 6월20일, PCT 종단에 나선지 벌써 88일째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들어왔다. 하지만 길은 아직도 눈에 묻혀있다. 예측한 산 쪽으로 가던 중 gps가 딱 1번 터졌다. 얼추 맞게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설사면 패스를 하나 넘고 다시 길을 잃었다.

그래도 전번 시에라 구간과는 달랐다. 그땐 욕하고 별 발악을 했지만 오늘은 될 때로 되라는 마음이다. 무조건 동쪽으로만 가면 찻길이 나오는 것을 지도로 확인을 했다.

걷는 속도가 굉장히 늦다. 길을 잃고 찾고를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gps 먹통으로 예측으로 하다 보니 길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선다. gps가 잘 돼서 쭉쭉 나아갔으면 좋겠다.

정 안되면 동쪽으로 탈출하면 된다. 가스를 아끼기 위해 불을 피워 신발과 양말을 말렸다. 강을 건너는데 팬티만 입고 슬리퍼 신고 건넜다. 물이 너무 차가웠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건넜다.

다시는 그 차가운 물을 건너기 싫다. 저녁을 먹고 생각에 잠겼다. 여기 와서 현재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게 된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그 순간들을 느낀다.

미래에 대해 현재를 충실히 느끼며 살아야지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위해 분주히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한 가지 소망이라면 그저 이 순간들을 즐길 수 있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서 얻어 가야 할 건 무엇인가.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길을 걷던중 만남 동갑내기 미국친구 den

6월25일, 93일차 1,898km를 걸었다.

전날 눈길을 걷던 중 백인 외국인 하이커를 만나 친구가 됐다. 그의 이름은 댄(Den)이다. 나이도 나랑 동갑이다. 댄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런데 댄은 북부 캘리포니아 만 종주한다고 한다.

여기 미국인들은 대부분 PCT를 부분 구간으로 일정 기간을 잡아놓고 종주하는 섹션 하이커들이다. 댄에겐 gps가 있어 눈길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 좋았다. 내 핸드폰 gps는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댄 이랑 걷다 보니 어느새 1,180마일(1898km) 지점이다. 드디어 눈이 없는 길이다. 너무 행복하다. 눈 밟기가 너무 지긋지긋했다. 눈으로부터 해방되니 행복하다. 보이는 길로만 가면 되니 길 잃을 염려가 없다. 15마일을 걸어 호수 근처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댄 이랑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좀 답답하다. 막상 뭘 물어보거나 모르는 영어 단어가 튀어나오면 깊은 대화가 잘 안 됐기 때문이다. 답답해서 미치겠다. 영어회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댄은 2일차라 그런지 몹시 힘들어한다. 그는 반바지를 입고 걸었는데 다리가 햇빛에 타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이제 겨우 2일차니 무척이나 힘든 게 당연하다. 어쨌든 함께 가는 게 뭔가 서로 의지가 되는 것 같다.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댄은 너무 힘들다고 했다. 1~2시간 정도 주저앉아 쉬었다. 댄은 피곤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혼자 브랜디를 마시던 중 한국 생각을 많이 했다.

친구들이랑 청주 하복대에서 마시는 소소한 술자리들이 떠올랐다, 주말마다 있던 학교 산악부의 산행이 그리워졌다, 가끔 주말이면 인력소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마시던 시원한 소맥도 스쳐지나갔다,

학교 갈 때 아침마다 빽빽한 831번 콩나물 버스가 다가온다, 저녁이면 혼자 노래를 틀어놓고 옥상에서 했던 운동도 한다. 어머니가 해줬던 삼계탕과 김치가 그리워진다, 물론 다 머릿속 상상이다.

산 아래에선 그저 일상이었던 것들이 그립고 그립다. 거의 3개월이 다 돼가고 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미들포인트. 여기가 pct의 딱 절반지점을 나타내는 곳이다.

7월2일, 드디어 100일차로 접어들었다.

잠을 굉장히 불편하게 잤다. 꿈을 꿨는데 큰 고양이 같은 짐승이 내 텐트 안으로 들어와 내 팔을 물었다. 눈 덮인 산을 내려오니 다른 걱정이 생겼다. 곰과 같은 짐승들이다.

여기서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은 곰과 마운틴 라이언이다. 그래서 밤에 혼자 텐트 치고 잘 때에는 나무가 부러지는 짐승들 발소리에 신경이 쓰여 잠을 깊게 못 자는 것 같다.

짐승에 대한 걱정 때문에 칼은 항상 텐트문 바로 앞에 놓고 잔다. 위험 상황이 오면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장기간 걷다 모면 각종 위험 상황이 많다. 그 중 가장 무서운 게 맹수들과 조우다.

날이 너무 뜨겁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았다. 너무 더워서 상의를 물에 적셔서 입고 다녔다. 마르면 다시 적시고를 반복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개울에서 코펠을 이용해 물 샤워를 했다.

언제부터인지 개울 근처에 텐트를 치면 늘 샤워를 한다. 그러면 잘 때 끈적이지 않고 쾌적한 느낌이 좋다. 여기 텐트 주변에 모기가 엄청 많다. 신기한 뱀도 보았다.

크렘 폰과 날 빈 수통, 정수기 등을 빼 무게를 줄여야겠다. 가벼울수록 장거리에 유리하고 발에 부담이 덜 드는 것 같다. 내일은 부디 25마일 이상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겠다.

7월11일, 109일차다.

오늘은 23마일을 운행했다. 아침에 똥이 너무 마려워 언덕 위로 올라가 똥을 쌌다. 외국인 하이커 남녀 2명이 내가 똥 싸는 곳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no no no no~! don't coming!"이라고 외쳤다.

하이커 2명이 바지를 벗고 쭈구려 앉아있는 모습을 봤다. 나는 황급히 휴지로 그곳을 닦고 바지를 올렸다. 나는 그들에게 "I'm done"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뒤돌아 서 있던 그들이 다시 왔다.

알고 보니 내가 대변을 본 곳은 트레일 바로 옆 1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너무 급한 나머지 길을 보지 못했다. 왜 보지 못 했던 걸까. 약간 쪽팔렸지만 '괜찮아 다시 그들을 보진 않을 거야'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어쨌든 오늘은 23마일 준수하게 왔다. 개울에서 샤워를 했다. 물이 너무 차가워 온몸을 비틀었다. 자꾸만 설사가 나온다. 뭘 잘못 먹은 건지 모르겠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집배원 아저씨와 부인. 부부는 내게 무나도 아늑하고 편안한 방을 내주었다.

7월15일이다. 종단에 나선지 113일차에 접어든다.

지나가시던 집배원 아저씨가 머물 곳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 호의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오후 3시에 우체국에서 보기로 했다.

집배원 아저씨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리고 부인 분이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마운틴 샤스타 마을 앞에 샤스타산으로 불리는 큰 산이 있다고 했다.

마운틴샤스타

이 마을엔 독일에서 이민 오신 분들이 유독 많이 산다. 샤쓰타산에 서린 어떠한 영적인 힘을 믿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마을에 도착했다. 아저씨 집에 가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충전을 했다.

아주머니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여기로 와 아저씨와 가정을 이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한국 음식도 있다고 했다. 한국 음식과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한 영향인 것 같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한국말로 자꾸 물었다. 이게 맞는지 어떻게 읽는지 물었다. 나는 친절하게 가르쳐드렸다. 저녁을 해주셨는데 된장 스튜라고 하는 된장찌개를 끓여주셨다. 된장찌개와는 약간 다른 맛이었다.

호의를 보여주신 아저씨 아주머니 부부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자기 딸들은 다 시집을 갔다며 남은 방을 내어주셨다. 너무나도 아늑한 늘 머릿속에 있던 그런 방이었다.

정말 편하게 잠을 잤다. 아침에는 트레일까지 직접 태워주시고 한국 라면도 주셨다.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마치 아들처럼 잘 챙겨주셨다.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하고 따뜻해졌다.

15마일 정도 걸어와 호수 근처에 텐트를 쳤다. 수영도 하고 믹스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부렸다. 송어가 엄청 많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송어들이다. 낚시해서 잡으면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왠지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다. 태양이 지는 호수에 비친 석양을 보고 있노라니 걱정도 생각도 사라진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7월23일, 121일차다. 총 도상거리 2,711km를 걸었다.

25마일을 주파하려다 멈췄다. 21마일 지점에서 텐트를 쳤다. 2,711km까지 왔다. 드디어 캘리포니아주 구간이 내일이면 모두 끝난다.

텐트 지퍼가 고장 났다. 개미들이 텐트에 구멍도 뚫어놓았다. 2번째로 신는 신발도 양옆에 구멍이 났다. 신발 밑창은 대부분 닳았다. 바지는 허리 부분이 배낭 허리벨트 마찰로 인해 해지고 찢어졌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내 몸과 장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땀범벅인 몸을 씻지 못해 물이 나오는 곳에서 코펠을 이용 샤워를 했다. 지하수처럼 땅에서 솟는 물인데 엄청 차가웠다. 엄청 빠르게 씻었다.

내일이면 가장 길었던 캘리포니아가 끝이 난다. 다음 보급기지까지 이틀이 더 걸린다. 식량이 약간 모자란다. 아껴서 나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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