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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해

충청대 경찰행정과 교수

# 장면 1

참여정부 시절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이해를 갖는 당사자들이 각자 저마다의 입장과 논리로 밤을 새워가며 토론을 하였습니다. 방송국마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100분 토론은 각자의 주장을 경청하며 드라마나 영화 이상 흥미로웠고, 극적인 반전이 이어지며 잠 못들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어느 방송사는 끝장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결론이 날 때 까지 밤새도록 토론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변화의 시기, 관공서도 각종 정책토론 및 공청회를 많이 개최하였습니다. 각종 학회도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각종 세미나가 봇물 터지듯 열렸고, 가을 단풍이 시작될 이 때쯤이면 대학 입구 거리는 가을 또는 추계학회 현수막이 적잖이 걸렸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도 도청, 시청은 각 분야마다 학회행사를 지원하여 그 내용들을 정책에 반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토론 르네상스였습니다.

# 장면 2

이명박 정부 시절입니다. 집권하자마자 터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하였습니다. 시민들은 광우병이 의심가는 쇠고기 수입이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데다가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을 포기한 굴욕외교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정국은 급랭했고, 청와대를 목전에 둔 광화문엔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선 연일 이 문제를 다루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필자의 기억으로 이전 정부도 금지해 왔던 고령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한 이명박 정부의 졸속외교와 안전성 문제가 연일 난타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 산어귀에서 스스로 자살을 합니다. 일시에 온 나라는 애도의 물결로 뒤덮였습니다. 그리고 찾아 온 것은 방송사 시사 및 토론프로그램의 폐지와 담당 PD, 기자들의 해고였습니다. 광화문 촛불시위는 강력히 진압되기 시작했고, 소위 명박산성이란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형편 상 국가나 지방정부의 지원 하에 거행되던 다양한 학회, 단체의 토론과 세미나는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대학 교수들은 조용히 용역사업과 점수를 인정하는 학술지 게재 투고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식 있는 학자들은 현실문제를 외면하고 침묵 속에 생존을 이어가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생산성을 나타내는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암흑기로 돌아간 것입니다.

# 장면 3

지난 7월 문재인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일임하며 향후 원전정책을 추진하겠음을 천명했습니다. 작게는 원전공사 재개부터, 크게는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놓고 진행된 이번 실험은 '숙의 민주주의'였습니다. 지난 3개월간 참여한 471명의 위원들은 원전과 신재생 전문가가 아닌 보통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혹자는 이 중차대한 국가정책의 방향을 전문가도 아닌 문외한들에게 맡긴다는 것에 심한 걱정을 제기하였습니다. 한편에서는 대선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던 원전폐기를 정부정책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공론화 위원들은 건설재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료, 정보, 주장들을 심층적,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습니다. 몰랐던 것을 정확히 아는 계기가 되었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시정하는 계기도 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막바지에는 2박 3일간 열띤 토론과 반박, 재반박이 이어지는 숙의, 그 자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론은 신고리 5,6호기의 제한적 허용과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숙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입니다. 만일 이 문제를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정부여당과 야당간 대결과 투쟁은 극한적으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과반 의석도 되지 않는 집권여당으로서 탈원은 밀고나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런 이슈였던 겁니다. 하지만 '숙의 민주주의'는 극단적 이해당사자들을 달래고 거기에 중차대한 에너지 정책의 방향과 내용까지 명확하게 정해주었습니다. 공사중단을 결사반대하며 본때를 보여주려 했던 몇몇 정당들을 머쓱하게 했던 것은 성숙한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만한 일이었습니다. 둘째는 대화와 토론의 힘을 알게 해줬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척도는 얼마나 민주적인 자기주장이 보장되어 있는지, 공평한 토론기회는 얼마나 가능한지, 주제와 관련된 객관적인 논거나 주장들은 충분한지, 그리고 결론은 얼마나 생산적인지 입니다. 자기만 옳다는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하고, 건전한 양심과 상식을 갖춘 시민들이 문제해결의 중심이 된 것이 이번 '숙의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토론은 다름을 인정하고,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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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