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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숲 해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을이 꽤 많이 걸어 왔나봅니다. 초록의 무리들을 온힘을 다해 봄을 밀어냈고 무성한 여름을 잘 지냈건만 자연의 시간은 어쩔 수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생명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제 혼자 스스로 자라 싱싱한 봄 그리고 여름을 지나 이제 서야 시들어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는 가을입니다. 가을은 설악산 단풍으로 시작하여 오대산으로 흘러 치악산을 넘어 월악산까지 왔다고 합니다. 굽이굽이 울긋불긋 오색의 파도를 일렁이며 이제 속리산을 넘어 남으로 흐르다가 바다건너 한라산에서 정점을 찍고 내장산에 돌아와 빨갛게 타오를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가을은 한층 깊어지겠지요.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요즈음 숲속의 생명들도 바빠졌습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자기의 색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투명한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숨겨둔 색을 모두 찾아내면 가을은 끝나겠지요.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해살이풀들도 다음 해를 위하여 씨앗을 만들고 나무들도 떨 켜를 만들고 수분 조절을 하고 겨울눈을 만들고 모두가 바쁘기만 합니다. 숲에 깃들어 사는 곤충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알로 또는 애벌레로 아니면 번데기로 그도 아니면 성충으로 가을이 가기 전에 겨울을 이겨낼 안식처를 찾기에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분주하면서도 조용하고 서늘한 가을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도 가을은 있습니다. 우리는 한 개의 작은 알에서 시작된 생명이며 울음소리와 함께 삶을 시작했습니다. 험난한 삶의 여정 이라고 예고하는 첫 소리는 우렁찼지만 평생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살아내기 위하여 봄날 한 알의 씨앗이 흙을 밀어내는 수고를 감당하듯이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에 죽기 살기로 적응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경쟁을 해야 하는 학업에서는 늘 앞서야 했고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밥벌이를 위해 뛰고 뛰어야 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양육 시켜야 하는 버거운 짐도 져야했지요. 우리 남편 말로는 이제 사는데 조금 헐거워졌다고 느낄 때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밀려나 소외되고 쓸데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서럽고 서운하고 소심해지는 것 같다고 푸념을 합니다. 그런 그에게 의술로도 치료가 어렵다는 병마가 같이 살겠다고 생 때를 부립니다.

'젊어 한창일 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중년 들어 간장(肝臟)이 저려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 박재삼 시인의 시 '산에서'의 시중에서 가슴에 닿는 구절입니다. 아련했던 봄날도 갔고 어쩔 줄 모르던 청춘도 갔고 지금은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을 느끼는 계절인 가을의 가운데 서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곳에서 잠시 길을 잃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다 멈춰선 곳이 벼랑 끝입니다. 막다른 곳 그곳에서 머뭇거리는 나의 동반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절집을 찾았습니다. 공림사 경내에 하늘을 받들고 오랫동안 서 계시는 느티나무를 가만히 안았습니다. 그에게 안긴 나의 모습은 너무도 작고 볼품없지만 천년을 살아오신 노거수의 넓고 큰 품은 따듯하기만 합니다.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것만 같습니다. 하루살이가 눈앞에 어린거립니다. 하루살이도 하루의 생명을 얻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냈겠지요. 나무아래는 산국이 노랗게 피고 있습니다. 천년을 살고 있는 늙은 느티나무나, 육십 여년을 살아왔지만 지금은 생사의 문턱에 서있는 나의 옆지기 삶이나, 일 년을 살다가 스러지는 노란 산국이나, 눈앞에 아른거리며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나, 다 같은 한 생 이겠지요. 시간이 다를 뿐 누구의 삶이든 최선을 다해 살아냈지만 바람 앞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생명이 아닐 런지요. 가을을 지나고 있는 지금 바람은 세차게 나뭇잎을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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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