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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두려웠지만, 다시 일어나 걸었다."

청주대 산악부 정기건 씨의 PCT 순례 179일 기록

  • 웹출고시간2017.10.12 18:52:01
  • 최종수정2017.10.15 14:42:31

편집자

사람들은 왜 인생의 끝에서 길을 택할까. 그것도 아주 먼 길을 걷는 걸까. 길을 걷는 건 길 위에서 길을 묻는 행위다.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에는 3대 트레일이 있다. 서부 태평양 산맥에 걸쳐 있는 태평양종단길(PCT)과 대륙종단길(CDT), 애팔래치안 트레일(AT)은 세계 트레커들이 완주를 꿈꾸는 길이다. 미국 대륙을 위에서 아래로 종단하는 3개 트레일이다.

그중 퍼시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은 지옥처럼 멀고 험한 길이다. 무려 4,265km다. '악마의 코스'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사막에서부터 눈 덮인 고산지대, 9개의 산맥, 화산지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다.

PCT에 도전하는 사람은 매일 30㎞씩 150일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도 연간 125만 명이 걷는다. 물론 포기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청주대 산악부 정기건(25·체육교육과 2년 휴학) 씨가 그 어렵고 험한 도전에 나서 성공했다.

본보는 정씨의 PCT 종단 성공 기사를 지난 9월29일 최초로 단독 보도했다. 이제 그가 체험한 179일간의 종주 기록을 5회로 나눠 정리해 연재한다.

캘리포니아주 사막은 죽거나 탄나무들이 너무나 많았다.

[충북일보]2017년 3월25일,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혼자 외국을 나가본 적이 없어 걱정이 밀려왔다. 인천공항에서 베이징을 거쳐 미국 LA 공항에 잘 도착한다. 신기하게도 한국 출발 시간과 30분 차이 나는 오전 9시다. 25일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LA 현지 시간으로 25일 오전 9시다.

강서 초등학교 민병국(54회) 선배의 도움을 받았다. 민 선배는 LA 공항에서 곧바로 나를 캄포(미국, 멕시코 국경)까지 차로 태워줬다. 가던 중 부탄가스와 라면 몇 개를 샀다. PCT 첫 출발지에 오후 5시30분쯤 도착해 부랴부랴 출발했다.

멕시코 국경 앞까지 갔다. 국경수비대가 총을 메고 순찰을 한다. 별 망설임 없이 종단에 나섰다. 밤이 되면 헤드랜턴을 켜고 걸었다. 몇 번이나 헬기가 내 쪽으로 다가와 머리 위를 지나갔다. 국경지대라 그런지 긴장감이 커졌다.

혼자 밤에 길을 걷는데 국경수비대 차 불빛이 내 쪽으로 오는 것 같다. 걱정스러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걷다 텐트 칠 곳을 찾아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시작이다.

4월17일, 종주에 나선지 23일째다.

길을 걷던 중 여기에 온 이유를 되돌아본다. 왜 여기서 PCT 4,285km를 걷고 있나. 도전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저 PCT라는 멀고 긴 길을 매개로 삼기 위함이었다. 직업적인 목표와 인생의 방향을 찾고 싶었던 게 진짜 목표였다.

길을 걷는 진짜 이유를 다시 묻는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준비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산악부의 한 선배는 이런 것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절대로 찾지 못한다고 했다. 아직까진 나도 모르겠다. 못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되도록 빨리 직업적인 목표와 인생의 방향을 잡고 싶다. 막연히 원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원하는 것을 찾고 싶다. 20대 방향의 종착지가 여기 PCT이길 소망한다.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방황하던 때로 돌아가긴 정말 싫다.

정말 원하는 직업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 목적지 없는 배가 되기보단 목적지가 확실한 배가 되고 싶다. PCT가 끝날 때 쯤 정말 이런 것들을 찾으면 좋겠다.

2천400m 쯤 올라왔을 때 눈이 시작이되었다.

4월20일, 지난 2일 동안 잘 먹고 잘 쉬었다.

도로 위를 걷던 중 감사하게도 어떤 젊은 남자분이 차를 태워줬다. 쉽게 트레일로 복귀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아무 대가 없이 태워주는 선한 마음에 고맙고 또 고맙다.

해발고도를 2,400m까지 올렸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많다. 곳곳의 경사가 높고 눈이 쌓인 곳이 많다. 힘든 운행 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아이젠이 없어 등산화로 킥킹(kicking)을 해 계단을 만들며 올라갔다.

능선상 바람 안드는곳에 텐트를 쳤다.

그러던 중 길을 잃었다. GPS가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 판단을 위해 계속 위로 올라갔다. 높이 올라오니 GPS가 터진다. 눈이 많아 아이젠이 절실하다. 나무로 아이젠을 만들어보려다가 포기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능선 안부를 찾았다.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 밑에 보다 춥다. 예거(양주)를 마시며 야경을 바라봤다. 모든 것들이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을 낸다. 내 삶도 그 속에 있었다.

문명 속의 삶은 치열하다. 하지만 높이서 바라볼 때는 아름답다.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도착하면 꼭 우유를 사먹었다.

4월30일, 36일째 걷고 있다.

한 달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며칠을 걸어 다음보급지인 테히치피 마을에 도착했다. 상점에 들러 소고기와 위스키 초코우유, 딸기우유, 콜라, 수박을 샀다. 시간이 늦은데다 모텔비용이 아까워 혼자 구덩이를 찾아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소고기를 구워 위스키와 먹었다. 머리는 감지 못해 떡이 됐다.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특히 발 냄새가 너무 심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지 모르겠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이러한 것을 겪으려고 여기에 온 것일까.

나는 원래 혼자 생활하기 좋아했다. 그게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래서 늘 혼자 지내는 걸 즐겼다. 하지만 오늘따라 외롭다. 도시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잘 먹고 있는데도 가슴 한쪽에 외로움이 밀려온다.

사막의 끝을 알리는 캐네디 메도우즈에 도착하기전.

5월11일, 벌써 47일째다.

오늘은 단 3마일(약 4.8km)만 걷는다. 전날 많이 걸어 놓은 덕이다. 그렇게 사막의 마지막인 케네디 메도우즈에 도착했다. 702마일(1,129km) 지점이다. 도착하자마자 다른 하이커들이 박수를 쳐준다. 하나의 퀘스트(quest)를 마친 느낌이다.

3,135km가 남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설산들은 높이가 3,000~4,000m쯤 된다. 100년 만의 폭설로 많은 이들이 여기서 멈춰 선다. 그리고 돌아가 오리건주, 워싱턴주부터 시작하고 눈이 녹으면 다시 돌아온다.

팀을 이뤄 가라는 주변의 충고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 길을 이어가고 싶었다. 장비도 구했으니 하루 평균 20마일(약 32km)씩을 예상했다. 그래도 설산이니 10마일(16km)~15마일(24km)쯤으로 수정해 생각한다.

결국 하루 15마일씩 계산해 150마일(241km) 총 10일 치의 식량을 챙겼다. 비상용으로 2일 치의 식량을 더 챙겨 총 12일 치의 식량을 확보했다. 설상 장비인 피켈과 크렘 폰 오버트라우져(스키바지), 고어텍스 장갑도 챙겼다.

10일 치의 행동식, 곰 통도 챙기니 양도 많고 부피도 커졌다. 약간 긴장되기도 하고 설산들이 기다려졌다. 이 기간에 미국에서 2번째로 높은 휘트니산에 올라갈 예정이다. 높이가 4,418m 정도 된다.

내일이면 다시 출발이다. 뭐든지 다 잘 될 거라고 마음속으로 혼자 다독인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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