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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이

한국문인협회 증평지부 회원

동방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었다. 목적지는 없지만 걸어야만 될 것 같았다. 동방을 위로해 줄 그 어떠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동방의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걸어주는 거 밖에 없었다.

"사자님. 언제부터 분위기가 이랬어요."

"뭘 말하는 겐가."

"경쟁하고, 도적질하고, 평가하고, 쫓아내고, 서로 불신하는 이런 분위기요."

"글쎄. 한 이십년 정도 된 것 같으이. 그 전에는 명부에 있는 자들 찾아가 안내하는 걸로 우리 역할은 끝났지. 그때는 마음도 몸도 편했다네. 대신 좀 지루하긴 했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일상이니 그럴 수밖에."

"지금은요."

"자네도 보고 느끼지 않았는가. 다들 불안에 떨고 있고, 그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실적을 구실삼아 멀쩡한 인간의 혼을 훔치고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게 할 짓인가."

"사자님. 이십년 전이면 누가 이곳의 책임자였을 때인가요."

"음, 그러니까 염라차사 강림이 부임하고부터 인 것 같네. 그 자가 오고부터 교육도 자주하고 조직문화를 쇄신해야하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실적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대왕께 보고하고 설치더라고."

"아니, 그런 걸 염라대왕님이 허락하셨단 말이에요?"

"그러게 말일세. 나도 그 점이 이해가 안 되네. 우리 일에 실적이 뭐가 필요한가. 수명도 다하지 않은 인간들을 막 잡아갈 거라면 명부가 뭔 필요가 있나. 귀찮은데 까짓것 한꺼번에 다 잡아가버리면 될 걸. 안 그런가."

동방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대왕님이 노망이 드셨나. 대왕님답지 않은 결정을 왜 내리신걸까요."

"허허. 그걸 나한테 물으면 내가 어찌 대답하나. 자네가 대왕님께 직접 여쭤보게나."

나는 동방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같은 새내기가 감히 대왕님을 만나 뵐 수 있어야죠. 다 아시면서…."

"나도 한 백여 년 전에 한 번 뵈었을 뿐이네."

동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기지 않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이네.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내 처지로는 그 분을 굳이 뵐 일이 있어야지."

"그럼, 다른 사자님들도 대왕님을 못 만나나요."

"아마도 그럴게야. 강림이라면 모르지만."

동방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대왕님은 강림사자님만 자주 만나니까 그 분 말만 주로 들으시겠네요."

"그렇기도 할게야."

동방은 입을 비죽비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흥, 그래도 말이 안 되죠. 아무리 귀를 막았다고 해도 그렇지. 지금 이 꼴로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신다는 건 직무유기죠."

"하하. 자네 간땡이가 부었군. 대왕님 욕을 그렇게 하고 살아남을 성 싶은가."

동방은 고개를 휙 돌려서 나를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김 사자님도 잘못이 많아요. 문제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도 직무유기죠."

강림과 염라대왕을 조준했던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사자님은 경력이나 품격으로 봐서 이런 문제에 앞장서야 될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비겁하게 안 하셨잖아요."

동방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 와 박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는요. 대왕님이나 염라차사님보다 사자님 같은 분들이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제도 때문에 많은 사자들이 고통 받고, 불쌍한 인간들이 혼을 도둑맞아서 힘들게 살고 있는 걸 알면서, 다 알면서도, 나서지 않는 게 더 나빠요!"

동방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는 저만치 뛰어갔다. 그의 등에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네. 퇴출명단에 자네가 아닌 내가 들어 있어야했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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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