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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의 실존 여성 가네코, 7년간 세종에서 살았다

일제 강점기 부강에 거주, 옥중수기서 당시 생활상 소개
"헌병이 조선인을 마당으로 끌어 내 옷을 벗기고는…"
향토사학자 이규상 씨,부강에 가네코 기념비 건립 추진

  • 웹출고시간2017.07.23 16:28:17
  • 최종수정2017.07.24 16:43:49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조선인 주인공 박열(오른쪽)과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실제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

ⓒ 사진 제공=이규상 씨
[충북일보=세종] 지난 6월 28일 개봉된 영화 '박열'에서 조선인 주인공 박열(朴烈·1902∼74)보다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26)에게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관람객이 많다.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조선인 주인공 박열(오른쪽)과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함께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 사진 제공=이규상 씨
물론 여배우(최희서 분)가 연기를 잘 했다. 하지만 식민지 남성을 사랑하다 23세에 생을 마감한,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일생이 관객들의 감성을 크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네코 후미코가 일제 강점기에 7년간 세종시 부강역 인근(당시 충북 문의군 삼도면)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호적 없던 일본소녀, 9세 때 조선 부강으로

가네코 후미코는 1931년 일본 춘추사(春秋社)에서 발간된 옥중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何が私をこうさせたか)'에서 9~16세 때 자신이 살던 부강면 모습을 작가 못지않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묘사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현재 세종시 향토사 연구에서도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 가운데 가네코 후미코를 열심히 연구한 대표적 인물은 부강 출신 향토사학자 이규상(57·전 청원군 부용면장)씨다. 2016년말 명예 퇴직한 이 씨는 '가네코 후미코의 부강 생활'이란 제목의 자료집(53쪽)도 만들었다.

영화 '박열'에 등장하는 일본인 여성 가네코 후미코가 1912~19년 살았던 집(세종시 부강면 부강리 358 부강역 인근) 입구. 설명하는 사람은 부강 출신 향토사학자 이규상(57·전 청원군 부용면장)씨다.

ⓒ 최준호기자
가네코 후미코는 요코하마(橫濱)에서 태어났다. 경찰(형사) 출신인 아버지는 천황제를 신봉하는 권위주의자, 어머니는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

하지만 생활이 방탕했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네코 후미코는 실제 부모는 있으나 호적은 없는 무적자(無籍者)였다. 비참한 생활을 전전하던 소녀는 1912년 할머니와 고모 부부가 살고 있던 조선 땅 부강으로 갔다.

가네코 후미코가 다닌 부강공립심상소학교 터. 학교는 현 부강초등학교 건물과 출입구 사이에 있었다.

ⓒ 최준호기자
일본인만 다니던 6년 과정의 부강공립심상소학교(현 부강초등학교 전신) 4학년에 입학했다.

할머니에게서 핍박을 많이 받아 자살까지 기도했지만,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녀는 학교 성적도 우수했다. 부강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그녀의 학적부를 보면 도화(圖畵·그림 그리기)와 재봉(裁縫) 등 일부 과목만 '을(乙)'이고 대부분 최고 등급인 '갑(甲)'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부강공립심상소학교,부강공립고등소학교 시절 학적부. 현재 부강초등학교에 남아 있다.

ⓒ 최준호기자
1917년 3월에는 2년 과정의 부강공립고등소학교(현재 중학교 과정)를 졸업했다.

◇일본인은 고지대,조선인은 저지대 거주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옥중수기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한 일본 후지산(오른쪽)과 세종시 부용봉의 실제 모습.

ⓒ 사진 제공=이규상 씨
수기에 따르면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생긴 부강역을 중심으로 '야마노테(山の手)'라고 불린 고지대에는 40여 가구의 일본인, '시타마치(下町)'라고 불린 저지대에는 조선인(400여 가구)이 주로 살았다. 가네코가 살던 집은 전망이 좋은 고지대(현 부강리 358)에 있었다.

가네코 후미코가 자신의 옥중수기에서 일본 후지산과 닮았다고 묘사한 세종시 부용봉의 오늘날 모습. 일제 강점기 때와 달리 산 중턱에 거대한 송전탑이 있다.

ⓒ 사진 제공=이규상 씨
일본인 소녀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참한 모습은 이랬다.

"정상(태산)에서는 부강 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헌병파견소(현 부강파출소)에서는 카키색 제복을 입은 헌병이 조선인을 마당으로 끌어 내 옷을 벗기고는 맨살이 드러난 엉덩이를 채찍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하나, 둘 헌병의 새된(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채찍을 맞고 있는 조선인의 울음섞인 소리도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경치는 이렇게 묘사했다.

"(외지에서 부강에 처음 오는)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부용봉이다. 소형 후지산(富士山·일본 최고의 산·높이 3천776m)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한 모습이다.

가네코후미코가 자신의 옥중수기에서 묘사한 세종시 부강면 내 주요 지점.

ⓒ 원지도 출처=네이버
산자락을 돌아 동에서 서로 가을 햇살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백천(白川·금강)이 흰 비단을 휘감은 듯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 모래밭 위를 짐을 실은 당나귀가 께느른한(몹시 기운이 없는) 모습으로 지나간다.

산자락에는 나무 사이로 조선인 마을의 낮은 초가지붕이 띄엄띄엄 보인다. 남화(南宗畵)를 보는 듯한 풍경이다.

처음으로 내가 살아서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1910년 당시 부강 나루터 모습. 가네코 후미코는 1912년부터 19년까지 부강에 살았다.

ⓒ 사진 제공=이규상 씨

1940년대 부강파출소 모습. 1912년부터 19년까지 부강에 거주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옥중수기에서 헌병파견소(현 부강파출소)에 끌려와 일본헌병에게 잔인하게 고문당하는 조선인의 비참한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 사진 제공=이규상 씨

지난 7월 14일 세종시 부강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부강 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향토사학자 이규상(오른쪽)씨.

ⓒ 부강초등학교
◇무정부주의자→사형선고,→23세에 자살

1919년 일본으로 돌아간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됐다. 22년 박열과 동거를 시작한 뒤 아나키즘 단체(불령사)를 조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26년 일왕을 암살하려 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해 7월 23일, 우쓰노미야(宇都宮) 형무소에서 끈으로 목을 매어 23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부강에서도 일어난 '3·1만세운동'도 목격한 가네코는 훗날 일본에서 박열과 함께 체포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조선인들이 지니고 있는 사상 중에서 일본인에 대한 반역적 정서만큼 제거하기 힘든 것은 없을 것입니다. 독립소요 광경을 목격한 다음 나 자신에서도 권력에 대한 반역적 기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쪽에서 전개하고 있는 독립운동을 생각할 때, 남의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감격이 가슴에서 용솟음쳤습니다."

현재의 부강역 모습. 1912년 일본에서 조선으로 온 가네코 후미코는 이 역에서 열차를 내린 뒤 역 인근에서 7년간 살았다.

ⓒ 최준호기자

부강 출신 향토사학자 이규상 씨가 만든 '가네코 후미코의 부강 생활' 자료집.

이규상 전 부용면장은 "가네코를 주인공으로 다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부강초등학교에 가네코 기념비,부용면사무소에는 3·1만세운동비를 건립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 / 최준호기자 choijh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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