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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밭둑을 돌아가니 온통 해바라기다. 초록색 잎과 샛노란 꽃이 쨍쨍한 볕 속에서 무척 강렬하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꽃. 해바라기는 또 해를 바라보며 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줄 알았는데 언제나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싹이 터서 자랄 때는 해를 따라 움직이기는 하나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움직임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했다.

엊그제 꽃밭을 손질하다가 채송화 뿌리를 건드렸다. 부랴부랴 흙을 덮어 다독다독해 두었다. 한편으로는 그냥 죽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오늘 보니 푸르게 살아났다. 들뜬 뿌리가 위로 뻗으려 했다면 필연 죽었다. 해바라기가 아니어도 새싹이 틀 때 보면 잎이나 줄기는 광합성 때문에 해를 바라보고 자란다. 반면 양분 흡수를 위해 뿌리가 땅 속으로 자라는 걸 보니 모든 식물의 공통된 생존 반응이었다.

지분대는 비를 맞아 잎도 푸르러질 테니 특유의 본능이다. 모처럼 비가 온다고 거실의 화초를 내놓던 날 보니, 바람에 한들거리는 잎사귀가 모두 한쪽으로 쏠려 있다. 볕이라야 아침에만 반짝하고 종일 어두운 곳이다. 알량한 볕이나마 쬐려고 저마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겠지. 그렇게 자라는 대신 뿌리는 땅 속 깊이 뻗는다니 뭔가 우주의 섭리와 맞물릴 것 같다. 비가 올 때는 으레 화초를 내놓곤 했는데 그 날은 느낌이 남달랐던 것일까.

해바라기도 한창 자랄 때는 얼마나 왕성했을지 모르겠다. 볕을 쬐면서 크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오래 뿌리박기 위해 땅 속 응달로 뻗어가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줄기와 잎은 실할수록 좋지만 뿌리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실하게 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굵고 마디게 뻗어 한창 자라는 식물을 지탱하는 일이다. 가령 잎도 줄기도 모두 볕을 향해 자라는데 뿌리까지 합세를 하면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 잎과 줄기가 최대한 볕을 받아 잘 크게 하자니 그 자신은 볕의 반대쪽으로 향해 가면서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닌지.

세상에는 비단 위에 꽃이라고 하는 '금상첨화'가 있다. 우리는 또 너나없이 그것을 추구하지만 이따금 불행이 겹치는 '설상가상'도 있다. 힘들기는 하지만 소망과 기쁨 같은 게 무성히 자란다 해도 운명이나 시련 등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실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가뜩이나 무성해진 잎인데 뿌리까지 볕을 받아 쑥쑥 자랐다가는 지탱하지 못하고 끝내 쓰러질 수도 있는 것처럼.

무엇보다 뿌리는 처음부터 땅 속에 묻혀 있었다. 특별히 마디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볕을 보기보다 그게 오히려 최상의 방편이듯 우리 삶 저변의 운명도 수많은 어려움이 겹치면서 영역을 다지는 걸까. 땅 속 깊이 내리는 것도 모자라 볕을 피해 훨씬 굽어 자라는 것도 남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불행 역시 땅 속에서도 볕의 반대쪽으로 뻗어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게 해 주는 역할 그대로다. 기쁨과 즐거움은 볕을 받아 크는 잎줄기로 볼 수 있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불행과 시련 등의 뿌리를 다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식물이 또 뿌리가 훨씬 많고 그래야 바람에도 깔축없이 버티는 것처럼, 불행과 역경도 뿌리가 굵어지면서 운명의 회오리도 능히 견디게 된다. 나 역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뿌리 역할로 수많은 잎과 꽃을 다는 식물처럼 내 인생의 나무에 뿌리가 한 마디쯤 뻗어나가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뿌리가 없으면 탐스러운 꽃과 열매도 무의미하듯 불행 같은 게 의외로 그 역할이 된다. 우리 인생의 저변에 뿌리박은 불행과 시련이야말로 소망을 이루는 원천이었다. 밭둑의 해바라기처럼 잎은 하늘 향해 자라고 뿌리는 그만치 땅을 넓혀가는 어기찬 속내를 배운다. 해바라기 샛노란 꽃도 그렇게 해서 피어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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