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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단재 순국 81주기 추모행사

청주시 낭성면 단재 사당·묘정서 개최

  • 웹출고시간2017.02.20 16:33:18
  • 최종수정2017.02.20 16:33:18
[충북일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며 언론인으로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 81주기를 기리는 자리가 마련된다.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는 21일 오전 10시30분 청주시 낭성면 단재신채호선생 사당 및 묘정에서 추모기념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과 이시종 충북지사, 이승훈 청주시장,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해 독립운동단체 인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행사는 유족과 신씨 문중의 집례로 1부 추모제와 2부 추모식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에서 출생한 신채호(1880.12.8~1936.2.21) 선생은 어릴 적 유교학문 수양에 몰입하다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한 뒤 독립협회에 가입해 적극 활동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했다.

1907년에는 안창호, 이갑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가, 신민회의 이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했으며, '대한협회회보' 등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했다. '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해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하기도 했다.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가했다. 이후 '무정부주의동방연맹' 활동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만으로 가던 중 일제에 체포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돼 1936년 옥사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유소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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