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4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6.12.06 14:15:30
  • 최종수정2016.12.06 17:59:27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역대 민선 청주시장 가운데 나기정(羅基正) 시장은 유독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문화시장'을 자임하였고, 그 중심에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와 직지가 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내년 벌써 10회를 맞이 하고, 직지는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데는 나시장의 뚝심이 크게 작용하였다. 나시장이 올 상반기에 펴년 '세계문화도시의 꿈' 자서전을 보면 그 과정에는 곡절이 적지 않았다.

유네스코 프랑스위원회는 처음에는 직지의 소유국으로 유네스코 등재 작업에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1999년 2월 유네스코 프랑스위원회는 갑자기 "등재 의사가 없다"고 알려왔다. 당시 청주지역 일부 시민단체가 직지반환 서명운동을 전개하였고, 이것이 유네스코 프랑스 위원회와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자극하였다.

그해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4회 유네스코 기록유산 자문회의에서 직지는 의안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나시장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2001년 6월 제5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자문회의를 26개국 45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최초로 청주에서 개최하였더. 이때 직지는 기록물 소유국이 아닌 생산국으로서 등재를 신청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당시 의장인 노르웨이 밴딕 루카스 박사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것은 사실임으로 당연히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유네스코 프랑스 위원회는 그때서야 등재협조 의사를 나타냈다. 직지는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연호(年號)는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기의 치세연차에 붙이는 칭호를 말한다. 최초의 연호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建元)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쓴 영락(永樂)이다.

직지 하권 맨 마지막장 모습.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직지 하권의 맨 끝장에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宣光七年丁巳七月日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선광칠년정사칠월 일 청주목외흥덕사 주자인시) 간기가 새겨져 있다. 선광 7년은 고려 우왕 3년으로 서기 1377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광은 우왕의 연호가 아니다. 고려는 나라를 보존하는 대신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후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1368년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는 베이징[北京]에 명군이 쳐들어오자 몽골 응창(應昌)으로 피신하고 북원(北元)을 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소종(昭宗)이 보위에 올랐고, 선광은 그의 연호이다. 소종은 명군이 계속 북진, 압박을 해오자 응창을 포기하고 몽골 고원 중앙의 옛 도시 카라코룸(Karakorum)으로 도망갔다. 소종은 여기서 1371년 칸(Khan)으로 즉위하고 한(漢)나라식으로 연호를 선광(宣光)으로 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고려인 기황후(奇皇后)이다. 소종은 이후 고려 공민왕에게 편지를 보내 같은 칭기즈칸의 후예로서 명(明)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요청하였으나 공민왕은 이를 거절했다. 공민왕은 신진사대부와 함께 친명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처럼 직지를 열쇠말로 만날 수 았는 인문학은 금속활자 외에도 다양하다. 참고로 직지는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를 지낸 플랑시가 자비로 사간 것이기 때문에 약탈 문화재는 아니다.

/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