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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8.29 14:51:06
  • 최종수정2016.08.29 17:49:44

김대종

수원문화재단 문화사업국장

필자에게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누구를 꼽겠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야샤 하이페츠(Jascha Hiefetz 1901~1987)라 하겠다. 그 이유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함 속에 가슴 깊이 숨어 있는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텅 빈 야외의 한 광장에서 어느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있다. 관객이라고는 멀리 우산을 쓴 병사 한 명이 전부였지만 바이올린 주자는 최선을 다해서 연주를 하고 있다. 이 연주자가 바로 하이페츠였다. 그 날 연주회는 전장의 군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이었다. 그것도 비가 쏟아져 진창이 되어버린 야외에서의 연주였다. 주변에서 이런 날씨에는 관객이 오지 않을 터이니 연주회를 취소하자고 하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연주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그는 한 사람의 병사를 놓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연주를 하였다. 그리고 먼 훗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껏 했던 연주들 중 단연 최고의 연주였다"라고 말했다.

19세기가 파가니니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누가 뭐라 해도 하이페츠의 시대였다. 하이페츠 보다 한발 앞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바이올린의 왕' 크라이슬러 조차도 어린 하이페츠의 연주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릎으로 우리 악기를 부러뜨려야겠습니다"고 말할 정도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거장 레오폴트 아우어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 가운데 뛰어난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하이페츠의 이름을 뺀 까닭을 묻자 "하이페츠는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신의 제자" 라고 했다.

1901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유태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세 살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하이페츠는 일리아 D.말킨을 거쳐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린니스트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가 되었다. 일곱 살 때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완벽하게 연주하여 데뷔하였다. 여덟 살에 벌써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했고 열 살에는 이미 유럽을 누비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1917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2년 어깨를 다쳐 어쩔 수 없이 악기를 놓을 때까지 평생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신의 제자라고 할 만큼 탁월한 실력의 그였지만 한 순간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떤 연주에서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너무 차다고 평하였지만 사실 그의 가슴은 누구보다도 따듯했다. 어려운 형편의 제자들을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자선공연이나 위문공연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섰다. 1923년 일본 공연을 불과 몇 주 앞두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폐허가 된 일본을 방문하여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예정에 없던 자선 연주회를 열기도 하였다. 하이페츠는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훌륭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유럽의 연합군 병영에서 피아노로 재즈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는 늘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위문공연 당시 병사들과 어울려 함께 찍은 사진에서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겉은 차가왔지만 가슴 속은 세상 누구보다도 따듯한 인간미를 간직했던 야샤 하이페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쓰기를 주저하지 않은 진정한 마에스트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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