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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전주최씨, 백년넘게 종계를 운영한 까닭은

충북대 조범희씨 논문
세월지나 촌수 멀어지자 문중제사·화목도모 차원
도지통해 계수입 확보… 한해 40% 여러용도 지출
"상부상조와 문중 위상 유지" 19세기 식 아름다움

  • 웹출고시간2016.04.11 18:21:43
  • 최종수정2016.04.11 18:21:43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의 전주최씨가 구한말에 집중적으로 기록한 《도곡봉상기》(賭谷捧上記) 종계 장부.

[충북일보] 계(契)는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전래의 민간협동 조직으로, 낙찰계·상포계·친목계 등의 종류가 있다.

조선후기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의 전주최씨들은 단순친목 이상의 문중계를 1백년 넘게 운영했다. 이른바 동성촌락를 배경으로 한 종계(宗系)다.
조범희(충북대 사학과 석사·사진) 씨가 역사실학회에서 발간하는 《역사와 현실》 제 58집에 '19세기 음성군 조촌리 전주최씨 종계 운영과 토지소유'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16세기 중반 최우령(崔禹齡)의 부인 연산곡씨는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자 한양의 50칸짜리 대저택과 노비 60여 구(口) 등을 처분하고 친정식구가 살고 있는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로 이주하였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노비를 인간이 아닌 매매가 가능한 재물 개념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숫자를 파악하는데 있어 원(員)이나 명(名)이 아닌 구로 호칭했다.

조촌리 일대의 전주최씨 세거는 그 같은 배경 속에 시작됐고, 이후 누대를 거치면서 동성촌락의 혈족집단으로 성장하자 최우령을 입향조로 숭모하였다.

조촌리 전주최씨의 종계는 《도곡봉상기》(賭谷捧上記)라는 운영 장부가 현존하고 있어 상세한 파악이 가능하다. 전주최씨 종계는 규모가 다른 중종계(1808~1935)와 소종계(1790~1882) 등 두 종류로 나뉘어져 운영됐다.

서문에 해당하는 '종계좌목'은 계를 시작하는 이유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촌수가 멀어지는 것은 애석하게 생각, 화목과 풍도를 위하여 계를 시작한다'고 적었다.

좌목은 종계 운영의 구체적인 내용을 △매년 시향일을 정하고 △제수를 마련해 제사를 지내며 △유사는 종인(宗人) 1명이 돌아가며 1~2년을 맡는다 등으로 정했다.

이밖에 종회의 결정 내용은 '公事'(공사)라는 이름으로 기록했고, 산림을 도벌한 종인에게는 벌금 등을 부과토록 했다.

종계의 주수입원은 도지(賭地)에서 나오는 소작료였다. 도지는 풍년이나 흉년에 관계없이 토지주가 해마다 일정한 금액을 정하여 걷는 소작료를 일컫는다.

그 반대개념은 토지주와 소작인이 수확량을 무조건 절반씩 나누는 것으로, 타작(打作) 또는 병작(倂作)이라고 불렀다.

전주최씨 중종계는 이같은 규정에 따라 연간 10~25석, 소종계는 5~10석을 수입으로 확보했다. 이같은 규모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조촌리에 들[野이] 적게 분포하는 자연환경이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주최씨 종계는 이렇게 얻은 수입의 40% 가량을 한 해 지출로 사용했다. 19세기 전기의 소종계 장부 내용을 보면 1810년, 1815년, 1820년의 연간 수입은 5석으로 모두 같았고, 이 가운데 매년 2석씩을 지출하였다.

지출 내역은 경사, 상사[장례], 제관(祭冠) 파견, 기타 등으로 비교적 다양했다. 지출 규모는 기로연, 회갑, 혼사 등의 경사에는 평균 1냥, 반면 상사에는 곱절에 가까운 1.9냥을 지출했다.

그리고 매년 경기도 용인, 진천, 청주 북이면 대율리 문중제사에는 조촌리 집성촌을 대표해 제관을 파견했다.

이는 용인에는 8세 선조인 최유경(崔有慶, 1343~1413)의 묘, 진천에는 입향조의 부친인 최효검 묘, 대율리에는 조선 중기의 대신 최명길(崔鳴吉, 1586~1647)과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의 묘 등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밖에 유사는 과거보러 나서는 종인, 서당의 책값, 음성향교와 서당 보수, 문곡서원 등에도 기타 항목의 계비를 지출하였다. 이 가운데 향교와 서원 등에의 계비 지출은 음성지역에서의 전주최씨 문중의 사족내 위상을 고려한 것으로 추론됐다.

조씨는 논문 말미를 '전주최씨의 1백년에 걸친 종계 운영에서는 서로 돕고자 했던, 그러면서 문중의 위상을 유지하려고 했던 소박한 공동의식이 묻어나고 있다'고 적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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