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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2.04 19:36:43
  • 최종수정2016.02.04 20:41:08

역 승강장에서 황간을 떠나려는 승객들이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충북일보]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驛)

가수 나훈아의 노래 '고향역'은 실제 작곡가의 고향 '황등역'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왜 고향역은 가슴 아릿한 향수의 공간인가.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라면 시외버스 정류장이나 고속버스 터미널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도심지에 있고, 사람들은 그저 주변 환경에는 무심한 채로 바쁘게 버스를 오르내린다.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의 시 '숲'의 내용같이 광화문 지하도와 같은 도심지에서 사람들은 서걱이는 모래처럼 대부분 그저 겉돌 뿐이다. 하지만 고즈넉한 산세가 둘러쳐 있고 시골집 앞마당 같은 고향 역사에 내리면 동향인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얽히는 눈길과 스치는 옷자락이 편안하다. 그들은 같은 역에 내려 추억이 깃든 고향 골목을 향하는 발걸음만으로도 동향의 숲을 이룬다. 그리하여 이번 설에는 고향의 푸근함에 문화의 향기까지 입힌 우리 고장의 황간역을 찾았다.

황간역 앞,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소달구지와 항아리에 쓴 고향의 시(詩)들이 고향역을 찾는 사람들을 정겹게 맞이하고 있다.

◇100년의 역사(驛舍),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

황간역은 경부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영동역과 추풍령역 사이에 있다. 1905년 1월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역사를 1956년 복구했다. 무궁화호가 운행되며 여객, 승차권 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100년을 면면히 이어온 역도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존폐위기에 놓이게 됐다. 농촌인구가 줄어들며 이용객이 현저히 감소한 까닭이다. 그로인해 지역주민들에게 소외된, 존재가치가 없는 역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현재 황간역에 정차하는 열차는 무궁화 15회, 통과열차 113회, 일평균 이용객이 300명에 불과하다. 연평균 영업수입은 90만원 정도다. 더 이상 지역의 교통수단 역할만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여 운영하기 곤란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00년의 역사(驛舍)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역사(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졌다. 황간읍에서 역(驛)은 고향의 사립문 역할을 해왔다. 고향을 떠날 때도, 돌아 올 때도 반드시 역을 통과해야 만했다. 꿈을 품고 설레거나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기도 한 장소였던 것이다.

"부임한지 몇 달 안 되어 황간역을 폐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황간역이 지역에서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와 역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했다."
2013년 부임한 강병규 역장은 황간역을 살리고 싶은 열망에 지역민과 의견을 나누며 대안을 찾아 나섰다.

◇100년의 역사(驛舍), 생명을 얻다

이곳에서 기차를 타는 사람이 없다면 외부에서 타고 오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곳 황간역은 111년 세월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시골역이라는 소중한 유산과 시골역의 문화적 가치 그리고 황간 지역의 풍부한 관광 인프라를 엮는 방향을 모색했다.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고향역 가꾸기'였다. 푸근한 고향의 정취와 낭만이 있는 시골역으로 변모하자는 것이었다. 세계 최초로 시와 그림이 있는 고향역으로 만들면서 문화전시 공간을 꾸몄다. 특히 역점을 둔 것은 관(官)주도 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영토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강병규 역장은"주민의 참여 없는 관(官) 주도 사업은 지속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더 가치가 발현되고 애착이 생기며 연속성도 더불어 이어진다."라고 말한다. 이어 황간역에 철도와 지역의 관광자원을 연계한 테마 여행사업으로 황간역의 가치를 창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충북 영동군 서쪽에 자리 잡은 황간면은 추풍령과 백두대간의 굵직한 산세, 금강의 지류인 초강천과 석천의 물줄기가 어울리며 수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한천팔경인 월류봉, 석천과 백화산이 품고 있는 반야사, 한국전쟁의 상흔이 짙은 노근리 평화공원은 여행코스로 제격이었다.
작은 역 광장에는 고향을 주제로 한 시와 그림을 새긴 전통옹기를 배치했다. 어렸을 적 한 번쯤 해봤을 땅따먹기, 돈가스, 사방치기 등 전통놀이판도 광장에 그려 넣어 추억을 되살려냈다. 역사 내에 설치한'난방 맞이방'은 어엿한 갤러리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벌써 30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승강장에는 시와 그림이 있는 장독대와 포토존, 지역의 특산물인 포도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기차 여행객을 위해 영동군의 지원을 받아 황간여행 노랑자전거 30대도 비치했다. 역세권 지역을 실제 답사한 자료로 황간여행 안내지도 7천부를 제작 배포했다. 황간역 중심의 지역관광사업을 위해 주민 위주로 결성된 황간마실협동조합과 함께 7가지 테마의 황간여행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비록 크진 않지만 의미 있는 성과가 되었다. 이렇게하여 현재의 황간역은 문화공간의 새 역사(驛舍)로 재탄생하며 새 역사(歷史)를 쓰게 되었다.

◇황간역, 교통수단에서 문화콘텐츠로 변모

황간역은 그 자체가 여행상품이 됐다. 작은 시골역이 대표적인 문화역이 되어 단체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3년 동안 신문과 TV, 라디오, 사보 잡지 등에 총 135회나 소개됐다. 이런 변화를 만든 가장 큰 힘은, 고향역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결집된 지역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 점이었다. 또한 유명 시인,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 철도동호인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황간역을 시와 그림, 음악이 어우러지는 품격 있는 문화역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황간역 변화를 이끈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제가 시골역장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지역본부에서 배려를 해주신 덕분이다. 현재까지 3년 1개월을 황간역장으로 일하고 있다. 3년이란 기간은, 일을 구상하고, 인적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며 어느 정도의 기반을 잡고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제 황간역은 문화역으로서의 인지도와 시설적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춘 상태다. 황간역을 명실상부한 지역의 문화명소로 운영해 가면서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가는 것, 앞으로 해야 할 과제다."

황간역에서 기차와 사람을 동시에 보살피는 강병규 역장도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서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中

황간역에'막차'가 당도하면 사람들이 꽃처럼 열 지어 내린다. 향수와 문화의 향기가 어우러진 황간역을 찾는, 가슴 따뜻한 이들이 계속 고향역의 정서를 찾아 자꾸만 몰려오고 있다.

/ 윤기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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