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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이 분주히 오가던 고찰이다. 동지 무렵 오후 4시 경내는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하다. 전각이 곳곳에 들어앉아 있어도 벌판처럼 느껴진다. 연암 박지원은 광활한 요동벌판을 대면하고 "통곡하기에 좋은 장소"라 했던가. 허풍처럼 들리겠지만 법주사 경내가 바로 그 느낌이다.
'석등'이란 제목을 달고 글을 구성한 지 두어 달이다.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아 애면글면하다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글의 소재에 따른 자료를 읽을수록 갈등은 깊어진다. 책자나 인터넷에 오른 석등 사진이 정면의 형상뿐이다. 모두 대상의 앞면만 바라본 것이다. 대상의 전부를 톺아보고 싶다는 근성이 도진다. 이내 몸과 마음은 법주사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한 시간여 달려와 알현한 사천왕석등이다. 쌍사자석등에 치여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법당 앞 오래된 석등. 나의 시선은 불의 집, 화사석(火舍石)의 사천왕상 조각에 닿아 있다. 몇 해 전 무량수전 앞 화사석 조각을 그리던 남자의 손놀림처럼 나의 눈동자도 빠르게 움직인다. 사천왕 얼굴의 선을 타고 내려와 실크 천이 자르르 흘러내린 주름진 모양을 스케치한다.

화엄경에 석등은 "부처님의 공양구 중 가장 으뜸은 등(燈), 마음을 밝히는 등은 곧 불법(佛法)이며, 불전 앞에 등을 세우는 것은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불법을 통하여 마음을 빛내기 위함"이란다. 그 뜻을 마음에 새기며 석등의 둘레를 탑돌이 하듯 돌며 마음의 등불을 켜본다.

쌍사자석등

유물조사에 의하면 석등은 사찰 및 능묘 그리고 유적지에 주로 남아 있다. 정형적인 석등 양식으로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을 든다. 하지만 예술성으로 생동감과 곡선이 아름다운 법주사 석등을 손꼽는다. 법주사 대웅보전 앞 보물 제15호 사천왕석등(報恩法住寺四天王石燈)과 팔상전 중간에 자리한 국보 제5호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은 신라석등의 걸작이다.

석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등불이 장치된 화사석이다. 각 면에는 대부분 무늬나 조각이 없거나 신장상이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법주사 두 석등은 화려하고 섬세하며 그 느낌도 남다르다. 수호신 격인 사천왕 조각은 험악한 얼굴과 자태에서 위엄이 서린다. 가장 오래된 쌍사자상 석등은 또 어떠한가. 길고 밋밋한 간주석이 아닌 쌍사자상 조각을 넣어 독특하다. 쌍사자의 형상은 암수라며 수놈의 엉덩이는 군살 없이 날렵하고 암놈은 엉덩이가 퍼졌다느니 많은 설로 후인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불교에서 사자는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사자의 눈썹과 갈기와 군살 없는 근육질의 섬세한 새김은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하여 포효할 것만 같다. 사악한 무리는 아예 근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곳, 청정도량임을 암묵적으로 알리는 건 아닐까 싶다.

쌍사자상을 톺아보니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다문 형상이다. "입을 벌린 것은 범어 첫 글자 '아 a' 자를 상징하며 창조·출발·시작을, 입을 다문 것은 범어 마지막 글자 '훔 hum' 자를 상징하며, 끝과 소멸을 의미한단다. '아'와 '훔'을 합하면 원만구족(圓滿具足)을 상징하는 범어(梵語) '옴 om' 자가 된다. 그러므로 쌍사자형상은 완성을" 의미한단다. 생성과 소멸, 시작과 끝을 의미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법주사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이 많은 명승고찰이다. 많은 문화재 중 글을 쓰다가 단숨에 달려와 보고 싶었던 것이 두 석등이다. 봄과 가을에는 등산객과 불교 신자들이 찾아들어 국보 쌍사자석등을 제대로 사진을 담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반면에 보물인 사천왕석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독특하고 화려하고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세월에 형상이 낡고 부서져 새김이 선명하진 않지만, 사천왕상이란 건 눈으로 확인된다. 석공이 두 석등의 형태나 조각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할만하다. 또한 사찰의 규모가 대단하니 통치자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이고 번창했을 그 시대를 상상해본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진부해보이지 않는 석등이다. 후인의 가슴에 살아남아 존재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석등을 완성한 후 등불을 밝혔을 선인의 손길을 떠올린다. 어둠이 내리고 팔각의 화창에서 은은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불빛은 법당을 오르는 댓돌과 가지런히 놓인 스님의 새하얀 고무신을 은근히 비추리라. 문틈으로 흘러나온 청아한 독경 소리는 만물을 깨우고 꽃살문에 어른거리는 스님의 자태는 불빛에 고고히 자리하리라.

만인의 염원이 깃든 단아한 석등 앞이다. 현재 쌍사자석등도 사천왕석등도 고요히 잠들어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엔 화창에 흔들리는 등불이 보인다. 불빛에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백팔 배를 올리는 어머니,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여념 없이 절을 올리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흔들리던 당신의 실루엣을 오래된 석등은 고이 간직하고 있으리라. 세월은 흐르고 흘러 내가 당신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서 두 손 모아 염원하고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를 이은 내 모습, 염원이란 개체를 통하여 돌고 돌아 같은 자리를 공유하며 존재한다. 당신의 온기와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순간 울컥해진다.

새해 일월, 다시 시작이다. 법어로 얘기하면 나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진 것이고, 나날이 소멸로 가는 중이다. 이 신성한 순간을 그냥 보낼 수가 있으랴. 석등에 등불을 켜듯 탁자 위에 향초를 켜놓고 앉는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흔들리는 불꽃을 잠시 응시하다 두 손을 모으고 기원한다. 스스로 부끄러운 삶이 아니길, 매사에 맑고 향기로운 정신으로 지내길. 또한, 무량수불을 향한 기도하던 당신처럼, 석등 조각에 심혼(心魂)을 다한 예인의 숨결처럼 남은 생을 불사르길 소원한다.

이은희 작가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2013년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김우종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결'

수필선집 '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 '수필세계', '에세이문예' 연재수필 집필 중,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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