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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 - 우지(宇治)

백제 도래인 후지와라, 우지에 대형 사찰을 세우다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낸 후 주요 중앙 관직 독점해
'고마이누'의 '고마'는 고구려, '이누'는 개(犬) 의미
백제 무령왕릉 '진묘수'와 비슷 문화전파 경로 방증
신라 도래인 하타씨, 양잠 풍년 기원해 여우상 세워

  • 웹출고시간2015.11.30 18:51:07
  • 최종수정2015.11.30 18:51:07
[충북일보] 교토의 북서쪽의 교외에 위치하는 이와쿠라에서 1년간 거주한 적이 있다. 9월 말이 되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가 되었다. 2009년 9월 27일, 그 동안 미루고 있었던 우지(宇治) 답사를 위해 이와쿠라를 나섰다. 이와쿠라는 일본의 동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작은 맨션 몇 개를 제외하고 주변 대부분이 단독주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깔끔한 단독주택의 주차장에 벽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주차한 차가 눈에 띈다. 주차에도 그들의 깔끔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엿보인다. 이와쿠라에서 우지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이와쿠라에서 버스를 타고 국제회관역으로 가서 교토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교토역에 도착하면 된다. JR교토역에서 JR이나리역에 도착하면 후시미이나리신사, JR우지역에 도착하면 교토 우지 평등원에 갈 수 있다.

JR대신 게이한 전철로 가고자하면 기온시죠역이나 산죠역에서 탑승하면 되는데, 교토에서 우지로 가는 게이한 전철은 2층으로 된 특급 열차로 매우 깨끗하고 고급스럽다. 게이한 우지역에는 평등원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 이 버스를 타면 우지시의 우지신사 근처의 마을 입구까지 무료로 갈 수 있다.

평등원과 우지신사로 가는 마을 입구의 찻집. 우지에서 생산된 녹차와 녹차아이스크림 상점으로 유명하다.

우지천을 마주보는 마을 입구에서 내리니 우지천의 맑은 물과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평등원(平等院)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우지는 일본 최고의 녹차 생산지이다. 평등원으로 가는 마을 입구부터 녹차아이스크림집이 나오고 그 뒤로는 우지차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우지시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지가미신사(宇治上神社)와 평등원, 가마쿠라시대에 건설된 우지신사(宇治神社)가 유명하다. 이외에도 우지시에는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당시 일본 정부가 교토 우지시 우토로 마을에 군비행장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강제 동원된 1,300여명의 조선인이 거주하던 우토로 마을이 있어서 우리의 근현대사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10세기 이후부터 시작해서 12세기 무렵의 헤이안시대를 일본에서는 특히 '국풍문화'의 시대라 부르고 있다. 일본의 국문학의 융성ㆍ일본의 풍물을 그리는 야마토에(大和繪)의 발달ㆍ불교의 말법사상의 유행 등으로 대표되는 국풍문화의 꽃이 우지에서 만개하기 때문에 우지는 일본의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교토를 떠나 우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일본인들이 가나문자를 만들어 일본인의 강점을 자유롭게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1세기 초,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에 의해 완성된 『겐지모노가타리』는 당대의 이상적 남성상인 히카루겐지(光源氏)의 출생과 시련, 많은 여성과의 다채로운 연애와 영화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겐지 사후에 후세들이 경험하는 삶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평등원(平等院). 우진각지붕과 맞배지붕, 팔작지붕으로 이뤄져 있다.

우지를 대표하는 사찰인 평등원은 백제계 도래인 출신인 후지와라(藤原)가문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 966~1028)가 당시 좌대신이 갖고 있던 우지의 별장을 매입하여 시회(詩會)와 음악회를 즐겨 열었던 곳인데, 그의 아들 요리미치가 이곳에 극락세계를 구현한 사찰을 세운 것이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아들 요리미치는 아버지의 별장을 물려받아 극락세계를 구현한 평등원을 건설한 것은 말법사상의 영향이 크다.

평등원의 봉황당 건립의 목적은 본존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극락정토를 현세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미타당이라고 하였는데, 그 아미타당이 에도시대 초기에 이르러 봉황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후지와라가문은 나카노오에 황자와 함께 소가씨를 몰아내고 다이카개신에서 공을 세운 나카토미노 가마타리가 덴지천황으로 부터 후지와라 성을 하사받은 것에서 시작된다. 헤이안 천도를 단행한 간무천황과 그 뒤를 이은 사가천황은 귀족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 귀족들은 많은 장원을 거느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왔다. 그 중 헤이안 시대 초기, 율령 정치 회복 과정에서 후지와라 가문이 정치 일선에 나서게 된다. 백제계 도래인 출신인 후지와라 가문은 나라시대의 실권은 물론이고 헤이안시대에도 섭정과 관백의 역할을 하면서 실권을 이어갔다. 딸을 천황에게 시집보내고 외척이 된 후지와라 씨들은 중앙 정부의 중추부를 장악하고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화려한 봉황당과 봉황당 내부의 아미타여래상을 관람한 후에 다시 우지강변으로 나와 다시 처음에 왔던 다리로 가니 우지강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부도13층석탑(浮島十三層石塔)이 눈에 띈다. 우지교의 안전을 기원함과 동시에 물고기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높이 15.2m로 일본 최대 최고의 석탑으로 가마쿠라시대 세워진 것이라 한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석탑을 보기 어렵다. 탑의 지붕과 탑신이 우리의 석탑에 비해 좁고 낮은 이유도 지진을 감안해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지강변의 유람선에서는 관광객이 도시락를 먹으면서 우지강을 유람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지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지의 수려한 풍광을 보노라면, 헤이안시대에 들어와 귀족들이 교토에서 그리 멀지 않고, 교통이 편하고, 물 맑고, 풍광이 수려한 이곳에 별장을 짓고 연회와 휴양을 즐겼다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헤이안시대에 건축된 세계문화유산 우지가미신사의 본전. 일본의 신사 중에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평등원을 벗어나 우지강 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면 우지신사가 나온다. 우지신사에서 다시 조금 걸어가면 우지가미신사가 나타난다. 우지가미신사의 본전은 헤이안시대의 건축으로 일본의 신사 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우지신사와 우지가미신사의 신전 양 옆에 있는 고마이누가 눈에 띈다. 우지신사는 가마쿠라시대의 건축 양식이고 목조로 된 80센티 높이의 고마이누도 가마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목조 고마이누 가운데 가장 크다.

우지신사의 목조 고마이누.(왼쪽) 우지가미신사의 사자(오른쪽).

신사의 고마이누는 대체로 하나는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데, 뿔이 있는 것이 고마이누, 없는 것은 사자라고 한다.

고마이누의 고마는 고마(高麗)와 발음이 같다. '고마'란 고구려를 뜻하는 말이고 '이누'는 개를 뜻하는 말이므로 고마이누란 '고구려 개'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고마이누는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의 신전 앞에 세워 신전을 지키는 동물상에서 유래하였을 것이고 중국의 사자 혹은 해태 상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마이누의 뿔은 무덤의 부장품으로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鎭墓獸)에서 유래하였다.

무령왕능 진묘수(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진묘수(鎭墓獸)의 원형은 전국시대 초(楚)나라 무덤의 부장품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백제의 무령왕릉이 발굴되었을 때 돌을 다듬어 만든 석수(石獸)가 발굴되었다. 이 석수가 바로 무령왕의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이었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양(梁)의 왕묘와 비슷하며 진묘수 역시 이와 유사하다. 즉 고마이누의 뿔의 기원은 진묘수에서 유래하며 이는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었다.

누에신사의 여우상(왼쪽). 여우의 털은 볏짚의 색과 비슷하며풍요를 상징한다고 한다.(오른쪽)

이렇게 이해한다면, 고마이누를 '고구려 개'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신사 앞에는 개 혹은 사자만이 아니라 돼지·용·여우·이리·호랑이 등의 석상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하타씨와 관계있는 누에신사와 후시미이나리신사에는 여우가 지키고 있다. 일본의 신사를 지키는 신상 가운데 풍요를 상징하는 여우는 마치 양잠과 벼농사를 통하여 교토를 풍요롭게 한 도래인 이주민 하타씨를 상징하는 것 같아 친근한 느낌이 든다.

/ 임병덕(충북대 사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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