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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문방사우 - 국내 유일 솔먹 제조 기술전수자 한상묵 먹장

  • 웹출고시간2015.10.01 17:58:48
  • 최종수정2015.11.12 18:59:23

편집자 주

한상묵(58) 먹장은 지난 2010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취묵향(醉墨香)공방'을 열고 전통방식으로 솔먹을 만들고 있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솔먹(송연묵-松煙墨) 뿐만 아니라 콩기름, 피마자기름, 참기름 등 식물성기름을 태워 만드는 '기름먹(유연묵-油煙墨)'과 석유나 천연가스를 태워 만드는 '카본먹(광물성묵鑛物性墨)'도 만든다.

국내 유일의 솔먹을 만드는 한상묵 먹장을 찾아 우리나라의 먹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상묵 먹장이 소나무의 '관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남기중기자
[충북일보]먹은 시간이 만든다. 20년 이상 튼실하게 자란 소나무의 '관솔(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내부)' 부분을 모아 열흘을 태운다. 연기가 많이 나도록 불 조절을 해 가며 조금씩 천천히 태워야만 한다.

소나무를 다 태우면 가마 안의 열기와 일산화탄소가 빠질때까지 하루 이상을 기다린다.

가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소나무가 타며 만들어낸 그을음을 긁어 모으면 까만 밀가루와 같은 모양새다. 거기에 녹인 아교를 부어 반죽한다. 이때도 아교의 온도 조절이 중요하다. 온도가 높으면 점도가 떨어지고 낮으면 반죽이 안된다.

찰흙처럼 점성이 느껴지는 그을음 반죽을 틀에 넣어 모양을 잡는다. 작은 벽돌처럼 모양 잡힌 먹은 1~2개월 간 매일 앞뒤로 뒤집어 말린다. 이 과정에서 부서지고 갈라지는 먹은 쓰지 못한다.

그렇게 1차 건조 과정을 거친 먹을 천장에 매달아 몇 달 더 바람을 쐬면 비로소 '솔먹'으로 완성된다.

◇ 조선왕조실록 복원에 사용된 '솔먹'

한상묵 먹장이 고용노동부장관으로부터 받은 숙련기술전수자 인증패 앞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 남기중기자
한 먹장이 만드는 솔먹은 1년에 20개가 되지 않는다. 먹 하나를 만드는데 아름드리 소나무 3~5그루를 태워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먹은 150g 정도의 무게에 100만원을 호가하며 시중에선 구할 수도 없다.

박물관이나 연구소에서 부탁을 받아 제작하며 개인이 구하고자 할 땐 1년 전 예약은 필수다.

봄과 가을에 소나무 그을음을 긁어 모아 겨울에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기 때문에 예약하지 않으면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여름엔 아교가 부패되기 쉽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 탓에 건조 되지 않아 작업을 쉰다.

한 먹장의 솔먹은 3년전부터 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원형복제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학계에선 기름먹의 개발 시기를 15세기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 시기의 왕조실록 원형복제엔 솔먹이 사용된다.

물론 그 이후의 실록 복제 사업엔 기름먹을 쓴다.

조선왕조실록 복제 외에 지난 7월부터 불교문화제 연구소 팔만대장경 인경사업에도 솔먹을 공급한다. 올해 안에 경판 500장 인경을 목표로 사업이 추진중이다.

10년 간 1천억 이상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업은 한 먹장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수묵담채화를 탄생시킨 '기름먹'

한상묵 먹장이 기름먹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남기중기자
한 먹장은 솔먹 못지 않은 정성을 들여 기름먹을 만든다. 원재료 '아주까리'도 마당 한 켠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식물성 기름을 종지에 담아 태워 그을음을 얻는다. 30여개의 종지를 한 상 가득 올려놓고 하루 종일 지키고 서서 2시간마다 그을음을 긁어내고 기름을 채워넣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그을음을 채집해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바람이 불지 않는 비닐하우스 내에서 진행되는 이 작업 중 실내 온도는 90도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 탓에 여름엔 작업이 불가능하다.

기름먹은 솔먹에 비해 입자가 곱다. 그 덕에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 특성으로 만들어진 화풍이 '몰골법'이다.

수묵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개 낀 풍경과 눈 쌓인 모습은 솔먹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한상묵 먹장이 솔먹으로 복원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남기중기자
입자가 굵은 솔먹이 탁하게 번진다면 기름먹은 부드럽게 번지는 차이점이 있다. 한지에 스며들어 넓게 퍼지는 기름먹이어야만 가능한 화법이다.

기름먹이 개발된 15세기를 기점으로 수묵담채화가 탄생, 동양 화풍에 변화를 가져왔다.

한 먹장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고가의 솔먹과 기름먹 외에 현대적인 방식으로 '카본먹'도 생산한다. 2~3만원의 가격으로 부담없이 쓸 수 있다.

한 먹장은 물푸레나무를 담가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물로 아교를 끓인다. 그래서 그의 솔먹에선 푸른 빛이 감도는 영롱한 검정 먹물이 만들어진다.

"일반 먹은 밤하늘 색, 물푸레나무 물로 만든 솔먹은 푸른 빛이 도는 새벽하늘 색이 난다"며 "전통 먹물의 빛과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건 솔먹 밖에 없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 남기중·성홍규기자

<인터뷰> 한상묵 먹장

한상묵 먹장이 전통방식으로 만든 가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남기중기자
- 먹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계기는?

"28살 때 먹 공장을 운영하던 이모부의 권유로 일을 배웠어요.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 터를 잡고 일을 시작한 뒤 10년 동안은 기술 습득을 위해 일본과 중국을 다녀오기도 했지요. 지난 2002년 경북 영양군서 전통방식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그 가마터가 전통방식의 먹을 만들던 가마가 있던 곳이었어요. 그후 그 가마터를 토대로 가마를 만들어 전통방식으로 솔먹을 만들고 있지요."

- 음성에 자리잡게 된 계기?.

"음성으로 이사오기 전 살고 있던 동탄면이 재개발돼 이사를 가야 했어요. '충북에 붓, 한지, 벼루 장인은 다 있는데 먹 장인만 없다'는 청주대 교수의 권유로 이 곳에 자리잡게 됐지요. 당시 처음엔 청주 지역으로 이주하기 위해 알아봤는데 세종시 개발 등으로 청주 지역의 땅값이 많이 올랐더라고요. 또다른 지역을 찾아보게 됐고 음성의 초천리가 '먹뱅이'라고 불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먹뱅이는 '먹을 만드는 동네'를 뜻하죠. 먹 생산이 활발했던 곳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초천리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죠."

- 그간의 성과는?

"금속활자(직지) 인쇄에 사용됐을 먹을 연구했어요. 연구의 결과로 종전의 학설과는 다르게, 직지를 인쇄한 먹이 기름먹이라는 것도 밝혀냈지요. 기존의 학설은 '시기상으로 솔먹이 사용됐을 수 밖에 없다' 였어요. 하지만 솔먹이 아닌 기름먹이 사용됐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고 제가 새로 개발한 전통 기름먹으로 인쇄해 본 결과 금속활자본 원본과 다름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직 학계에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죠. 지난 2006년 경기도 명장, 2014년엔 전통먹분야 숙련기술전수자 증서를 받았어요. 국가적으로도 미약하나마 전통 먹의 중요성을 알아봐 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현재 진행중인 작업은?

"문화재청과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 불교문화제 연구소와 팔만대장경 인경사업을 함께 하고 있어요. 이 외에도 '할랄 코리아 협동조합'과 함께 한지에 먹으로 '코란'을 찍는 작업을 추진중이고요. 천연제품을 사용하고 펄프지 사용을 줄여 자연보호를 하겠다는 이슬람 국가 차원의 사업이라고 해요. 코란은 원칙적으로 '메카'에서만 인쇄가 가능하고 화공약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사업이기에 제작비 문제가 커서 이슬람 국가와 할랄 코리아 측의 논의가 쉽게 끝나지 않네요."

- 향후 계획은?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음성에서 열린 '설성문화제'에 작품을 전시했지요. 18일부터 열린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도 전시중이고요. 요즘 먹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수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 외엔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의 전통 먹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조선왕조실록 복원과 같은 국가 사업과는 별개로 우리 국민들이 전통의 맥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먹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배우고 익힌 먹장의 기술은 후대에 끊기지 않도록 딸에게 전수하고 있어요."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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