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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학교역사가 말한다 - 옥천 청산초등학교

개교 110주년을 맞아 세계로 미래로 꿈을 품은 행복한 청산초

  • 웹출고시간2015.08.20 16:31:57
  • 최종수정2015.09.06 16:32:28

1960년대 청산초등학교 전경.

[충북일보]1905년 4월 1일 청산사립 신명학교로 문을 연 청산초등학교(교장 남순화)는 110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뿌리 깊은 나무가 됐다.

여기에는 남순화 교장, 김영임 교감 등 24명의 교직원이 사랑의 실천으로 행복한 청산교육을 가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산사립신명학교로 개교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청산사립신명학교로 개교해 1915년 1회 졸업생 18명을 시작으로 1946년 4월 1일 청산국민학교로 개칭했고, 1950년 7월 22일 한국전쟁으로 정규 교실이 전소돼 학업을 중단했다.

지금은 농촌 인구의 감소로 7학급 100여명의 학생들이 있지만 한 때는 2천300여 명이 생활했던 곳으로 현재 110회 졸업에서 총 9천7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80년 청산초 병설 유치원 개원, 1995년 3월 1일 예곡, 대월분교장이 본교에 통합했으며, 1999년 3월 1일 청동초가 통합돼 청산초는 4개 학교가 통합된 배움터다.

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청산초를 에워쌌고, 그 틈바구니에서 청산면 사람들의 애정을 듬뿍 받아 2005년 100주년 기념으로 세월의 한을 그대로 간직한 '창씨개명 졸업장'을 우리 이름으로 되찾아주는 작업을 했다.

1943년(소화 18년) 3월 15일 청산초등학교 28회 운동회 모습.

일제강점기 26회부터 30회 졸업생 600여 명은 일본식 이름으로 적혀 있는데 이 중 553명을 우리 이름으로 수정해 우리말로 된 졸업장을 만들어 26회에서 30회까지 생존해 있는 졸업생 104명에게 전달했다. 당시 청산초 총동문회(회장 안철호)는 10년 전 일찌감치 한국 이름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늦게나마 10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졸업장을 수여했다.

2015년 청산초는 110회 졸업식을 맞아 이벤트로 졸업생들이 졸업 후에도 지역사회와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위해 학부모와 졸업생이 함께 단상에 올라 각 동문의 대표에게 졸업장과 장학금을 받았고 4월 1일 개교 110주년은 대천해수욕장에서 운동회를 개최했다.

◇청산초의 참 좋은 교육 시설

청산초에는 배드민턴 선수들의 훈련장이며 지역주민의 화합과 체력장인 청산관, 어린이들의 개성과 표현능력의 기회를 제공하는 청산아트홀, 사방치기 등 자유로운 놀이를 할 수 있는 운동장 놀이교실, 수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 넓은 운동장 등 어린이들에게 꼭 맞는 다양한 교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개교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옥천 청산초등학교 전경.

또 청산초 100년 사료와 지역의 역사까지 간직하고 있는 향토사료관은 40여 년 전 졸업생인 장용호씨가 기증한 도서관을 리모델링했고 2014년 지붕공사와 함께 청산면사무소의 도움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공룡나라, 물속나라 벽화까지 그려 더욱 멋진 공간이 됐다.

개교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내에 세운 기념비

2006년 저학년 도서관 '꿈초롱 도서관'을 개관했고, 2011년엔 지역주민까지 함께하는 디지털도서관을 개관, 정원에는 청산초 출신 조각가인 박수용씨가 제작한 기념조형물인 100주년 기념탑 '세계로 미래로'가 설치됐다.

◇청산초를 졸업한 유명 인사

청산초를 졸업한 유명 인사는 전 해군제독 한광수(12회), 전 법무부장관 이봉성(13회), 전 국회의원 윤군장군 박준병(31회), 전 국회의원이면서 에넥스 회장 박유재(32회), 전 충북도의원 안철호(38회), 전 영동대총장과 보건복지부차관 송재성(45회)씨 등이 있다.

또 졸업식 노래를 작곡한 정순철 선생, 시집 '국경의 바람소리'를 펴낸 이은방 시인은 다니다 전학을 갔고 최근 10년간 국내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류시화 시인 역시 6학년 2학기때 서울로 전학을 가는 등 정치, 경제, 문화적인 인물들이 고루 배출된 학교다.

특히 청산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155명인데, 2014년 한국전쟁 발발 64주년을 맞아 육군 37사단의 협조로 본교 졸업 참전용사 16명에게 명패전달식을 했다.

◇함께 행복한 교육을 위해

청산초는 바르고 튼튼하며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기 위해 그림처럼 아름다운 학교에서 따뜻한 품성을 가진 어린이를 기르고 있으며, 과학한국을 위한 다양한 교육 활동으로 과학적 탐구 능력과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14년 전국 자연관찰탐구대회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2015년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특상을 받았다.

2015년 2월 청산초등학교의 100회 졸업식이 열리고 있다.

또 배드민턴은 34회 충청북도소년체육대회에서 단체전 우승, 2005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동메달, 2011년 국제대회 수라바야컵 우승 및 전국소년체전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2015년 현재 3·4·5학년 선수들이 2016년의 영광을 위해 강화훈련을 하고 있다.

또한 본교 교육활동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교육의 동반자로의 학부모 역할 정립과 교육의 모니터링을 통한 학교교육 참여 기회를 위해 학부모 대상 월 2회 '찾아가는 부모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산면의 전통행사인 백중씨름대회와 청산향교의 석전제, 청산향교에서는 해마다 한자교실과 올바른 예절 및 바른 인성을 기르는데 큰 도움을 주는 충·효·예 교실과 역사체험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충청북도 지정 스포츠동아리 연구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옥천 / 손근방·김병학기자

청산초 38회 졸업생 안철호씨 인터뷰

38회 졸업생 안철호 청산초등학교 동문회장

찌든 가난으로 참으로 어려웠던 학창 시절이었다

6.25전쟁으로 학교가 전소돼 마을회관과 천주교에서 수업

안철호(76·사진·전 충북도의회 의원) 청산초등학교 동문회장은 "해방은 되었지만 찌든 가난으로 어수선하던 1947년 청산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는데, 새삼 힘들게 다녔던 생각이 난다"며 당시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에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는 "그래도 지금보다 그 때가 학생 수가 많았어요. 4학년 되던 해 6.25 한국전쟁이 났는데 시골이어서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채 피난을 가야한다고 해서 다들 소달구지에 짐을 대충 싣고 무작정 피난을 떠나긴 했습니다. 전쟁을 피해 피난을 가는데도 부모님이 옆에 계셔서인지 그리 무섭지 않았다"며 "그게 피난인지 소풍인지 구별이 못했으니 참 철없던 시절이었지요"라고 했다.

또 그는 "그해 11월 청산에 오니 학교가 폭격을 당해 반 밖에 안 남았습니다. 12월에 인근 마을회관과 천주교에서 다시 수업을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발전된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청산초가 자랑스럽다"며 "지난 100회 졸업식에서 머리가 허연 동문들이 졸업장을 받는 모습은 정말 감개무량 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안씨는 "4학년 되던 해 6.25가 일어나 학교가 불에 타 전소되어 옮겨 다니면서 어렵게 공부하면서 청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며 "지금도 변치 않는 좌우명은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이 일등'이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항상 생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옛날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88올림픽과 월드컵을 성대하게 치르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가가 경제위기에 처한 그리이스를 보아도 우리나라가 IMF를 얼마나 슬기롭게 넘겼습니까. 우리국민은 무엇보다 단결심이 강하고 정이 많은 민족이어서 그 힘이 오늘날 세계 10대 강대국 안에 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요즘은 학교에서 급식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모두들 참 가난했습니다. 밥을 굶고 오는 친구도 참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구호품인 우유가루로 끓인 죽과 단단한 빵을 주었지요. 요즘은 밥을 굶고 오는 학생도 없고, 학교에서 무료로 점심을 주는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피력했다.

영원한 청산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안씨는 "충북대 약대를 나와 청산에서 약국을 경영 했는데 당시 청산에는 병원이 없어 아픈 주민들이 찾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골 외진 동네까지 왕진을 다녔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지난세월을 돌이켜보면 일장춘몽이었다는 안씨는 청산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챙기는 지역의 일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옥천 / 손근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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