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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누들' 면(麵) 탐미 - 청주시 사직1동 공주칼국수

무색무취(無色無臭) 담백함에 담긴 '궁극의 맛'

  • 웹출고시간2015.02.05 18:56:40
  • 최종수정2015.02.05 18:56:40
"칼을 쥔 어머니는 우는 여자가 아닌, 새끼를 먹이는 어미가 되어 칼자국마다에 강인한 모성과 생명력을 담았다. 그러니까 새끼들은 엄마의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난 칼자국까지 함께 삼켰고, 무수한 칼자국이 몸 구석구석 뼛속까지 새겨졌기에 '어미가 아픈 것'이다."

-김애란의 단편집 <칼자국>中

사직동 공주칼국수 간판

사직 1동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시간이 멈춘 듯 허름한 판자 간판이 사람을 반긴다.

'공주칼국수'

일반 가정집 같은 주택 대문 앞에 달린 식당 간판은 아무런 멋도 기교도 없이 그냥 찍어낸 서체다.

신기하게 이 집 칼국수 맛이 그대로 간판을 닮았다. 무심한 듯 담백한 '공주칼국수' 맛을 잊지 못한 단골들의 발길이 여전히 분주하다.

주인 채말순(61)씨가 칼국수 장사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IMF로 어려워진 살림을 위해 세상으로 나섰다.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이 칼국수였다.


"내가 만든 칼국수를 다들 좋아했어요. 집에 항상 손님이 많았거든요. 가장 쉽게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이 칼국수잖아요·"

1997년 벽돌공장 옆에 함바집 하나가 들어섰다.

다른 음식은 일체 사절하고 칼국수만 팔았다. 오가던 막일꾼들이 아무 때나 간식처럼 '뚝딱' 부담 없이 먹고 가면서 입소문이 났다.

어떤 멋도 색깔도 쏙 뺀, 그야말로 무색무취의 담백한 맛 그 자체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맛을 좋아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맹물에 소금 간을 하고 칼국수를 끓여 냈다. 반찬도 신 김치 하나였다. 푸짐한 칼국수에 양념장을 얹어 휘휘 젓고 신 김치 하나 달랑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 약간의 풍미라면 호박을 채 썰어 넣은 정도다.

"특별한 맛이 없는 것이 이 집의 장점이야. 뭐랄까. 시골장터에서 급하게 오가며 볼일을 봐야 하는 장돌뱅이가 찾는 음식이랄까. 언제 젊은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밀가루 맛이 나서 싫대. 그런데 그게 어머니의 진짜 손맛이거든."

함께 온 동료는 그렇게 맛을 평했다.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주물러 계속 치대면 찰기가 생기면서 쫀득해진다. 콩가루 섞인 반죽이 숙성과정을 거치면 다시 홍두깨로 넓게 편다.

그 몸을 동글게 말아내 곧 '썩썩' 썰어낸다. 적당한 찰기의 반죽이 도마 위에서 칼날로 부드럽게 몸을 세세히 나누는 소리 자체가 이미 식감을 자극한다.

썰어낸 국수 가닥들을 어머니 마음 같은 뜨끈한 물에 담그면 금방 해맑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풀어져 먹음직스럽다.

양념장(왼쪽)과 겉절이

공주칼국수의 비결을 묻자, 채말순(61)씨는 "비결은 무슨 비결· 그냥 맹물에 소금 간을 해서 끓여 낸 건데. 우리 집 간장 맛은 전국 최고여. 고추, 마늘, 파 넣은 양념장이 맛있지요."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사실 잘 담근 집 간장이야말로 그 어떤 현대식 식재료도 따라올 수 없는 웅숭깊은 맛이다.

그리하여 이집 칼국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통로 역할의 마력을 발휘한다. 화려한 치장으로 눈길을 잡아끌려는 몸부림 없이 진실된 민낯의 힘은 강하다.

그래서 가끔 외로울 때, 편한 사람과 함께 이곳의 국수 한 그릇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 주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이런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추억을 찾아 끊이지 않고 드나든다.

이 집의 메뉴는 칼국수가 전부다. 가격은 5천원. 10년 전, 중간에 한 번 가게를 그만 둔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집 칼국수 맛을 잊지 못하는 단골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자신의 집에서 아무 꾸밈없이 달랑 간판 하나 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식당이 그냥 집이다. 거실과 안방, 사랑방 아무데서나 상 펴고 주문하면 그만이다.

집에서 먹는 칼국수처럼 푸근한 분위기다. 혹자는 이 집 상호를 두고 특정 지역을 연상할지 모르겠으나 그곳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단지 큰딸의 애칭 '공주'를 딴 것이란다.

알고 보면 간판과 음식의 연관성이 아이러니하다. 허나 '로마의 휴일'의 화려하고 사랑스런 공주도 소박한 음식을 즐겼으니 그 또한 아주 어색한 조합은 아닐 듯 싶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는 칼국수를 두고 "까닭 없이 위로받고 싶어지는 날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 전의 고적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양식이었다고 추억한다.

이쯤 되면 비록 칼국수 한 그릇에 불과해도 가히 영혼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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