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명소 그림여행 - 라앵의 작가의 수암골

수암골, 풍경을 열다

  • 웹출고시간2014.09.18 19:09:29
  • 최종수정2014.10.09 17:57:44

청주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살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삶은 그 언덕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가팔랐다. 그런데 그 수암골에 언젠가부터 차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표적 달동네였던 곳에 시민단체와 풍물팀이 몰려와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춤을 췄다. 주말이면 인적이 드물었던 마을 골목을 젊은 부부들이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거닐었다. 전국 각지에서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마을주민들에게는 고통스러웠던 가파른 언덕 계단을 그들은 계단 하나하나에 추억을 쌓으며 올랐다.

2007년 이후, 수암골은 새로운 생기로 활기를 띠며 각광받는 명소로 부상(浮上)했다. 한적한 달동네 수암골에 뜻밖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수암골의 변화는 통영의 동피랑 마을의 영향이 컸다. 통영시는 낙후된 동피랑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다.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자, 통영시는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했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네는 벽화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했다.

그리고 동피랑의 바람이 청주 수암골까지 불어왔다. 남쪽 마을의 훈풍은 수암골에 색채의 빛을 안겼다. 충북 민예총 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 무채색의 스산한 골목은 다양한 이야기 빛깔 그림에 의해 산뜻한 골목으로 재탄생했다.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도 탔다.

"이곳이 살기는 힘들어도 풍경 하나는 그만이여."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르다 잠시 앉아 쉬던 할머니 한 분이 말한다. 이곳 수암골에서 바라본 청주시의 풍경은 수암골 주민들의 작은 위안거리였다. 우암산 순회도로 바로 밑이니 도시의 전망이 거의 들어온다. 풍경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니 주민들은 가슴 시원하게 일별하며 삶의 고단함을 씻어내곤 했다.


그런데 수암골이 유명세를 타니, 가진 자들이 발 빠르게 진출해 풍경과 몰려든 사람들을 탐했다. 전망 좋은 장소에 근사한 건물을 짓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 투명한 유리 어항처럼 화려한 카페를 만들었다. 어느 순간 수암골은 아기자기한 달동네의 이미지에서 카페촌으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관광지로 여겼던 사람들도 이제 전망 좋은 커피숍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장소로 인식이 바뀌었다. 수암골 마을 위로 불쑥 높은 건물이 솟아나니, 풍경도 자꾸만 가려졌다.

라앵의 수암골은 이탈리아 북서부 라 스페치아 지방의 작은 마을 마나롤라를 떠올리게 한다. 이 해변마을은 파스텔톤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좁은 골목 길, 동화 같은 포구와 멋스런 레스토랑이 어우러져 있다. 마을은 절벽 위의 좁은 길로 연결 돼 자동차는 쉽게 닿지 못한다. 수백 년을 내려왔어도 이 마을의 바다풍경은 가릴 수 없다. 바다에 건물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라앵 작가의 작품 '수암골'은 알록달록한 지붕들과 몽환적인 우암산의 봄풍경이 거친 질감의 절개지로 떠받혀 있다. 바닥에 뿌리처럼 흘러내린 검은 물감은 수암골을 둥둥 뜨게 만든다. 마술처럼 한순간 마을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마치 수암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진다. 높은 건물로 마을의 전망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수암골에서 올려다보는 풍경은 푸른 하늘과 우암산의 나무들만으로도 족하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라앵 작가

낡고 허름하고 보잘 것 없는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는 삶은 개발과 화려한 현대화라는 무차별적 행위에 하나둘 소외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하루만 지나면 한낱 폐지로 변해 버려지는 종이로 겹겹이 쌓고 붙이는 수많은 과정과 시간을 통해 소외되거나 사라지는 것에 대한 존재의 가치, 그리고 나를 찾아가고자 했다.

1995 서원대학교 가정관리학과 졸업

1999 홍익대학교 산업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전공 졸업

2014 충북인문자연진경전, 청주예술의 전당, 청주

2014 GIAF 광화문 국제 아트 페스티벌, 세종문화회관, 서울

2014 한뼘, 드로잉 : 쑈, 대청호미술관, 청원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