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성안길의 몰락 - ①맥 못추는 상권

곳곳에 '임대'… "하루 버티기도 힘들어"
10년새 점포 3분의 1 사라져 존폐 위기
경제불황·청주상권 지각변동 주요인

2019.10.22 21:08:00

편집자

전국 핵심 가두상권으로 꼽히는 청주 성안길이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도처가 빈 가게에 불야성이었던 목 좋은 상가의 불도 꺼지면서 사실상 고사 직전이다. 자영업자들은 IMF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라며 짙은 한숨을 내뱉는다. 한낮에도 중심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될 정도로 슬럼화도 심각하다. 대표 원도심인 성안길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청주지역 최고 상권으로 명성을 날리던 성안길이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일 청주 성안길 상점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김태훈기자
[충북일보 유소라기자] 청주 성안길은 옛 청주읍성의 북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큰 길로, 청주읍성 안에 있는 거리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서울 명동, 대구 동성로와 함께 전국 로드상권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성안길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임대' 푯말이 붙은 빈 점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령 상가들이 늘었다.

◇내리막길 걷는 골목상권

"앞이 캄캄하죠. 울며 겨자먹기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

김동익·안수연(55)씨 부부는 지난 2000년 10월 남문로에 문을 연 apM몰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apM 골목'으로 불리는 보세 옷 매장 골목에서 남성복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로 10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김씨 부부는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처음 장사 시작하고 2~3년 동안은 한 달 매출 3천만 원씩도 찍었다"며 "그땐 아르바이트생을 2명씩 고용할 정도로 바빴다. 권리금이 8천~9천만 원까지 간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대목으로 불리는 명절이나 연말에는 손님이 몰려 밤 10시를 넘겼는데도 셔터를 내리지 못할 정도로 골목 전체가 호황을 누렸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점차 매출은 하락했고 3~4년 전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야속하게도 월세는 물가인상률만큼 1년에 한 번씩 올랐다. 직원 고용은커녕 부부 둘이서 하루종일 매장을 지켰다. 인건비라도 줄여보기 위해서였다.

고심 끝에 김씨 부부는 옆 매장의 가벽을 없애 매장을 넓혔다. 특단의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바닥을 쳤던 매출이 다시 오를리 만무했다. 월세 부담만 커지자 결국 매장을 원상복구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인근 패스트푸드점이나 유명 의류브랜드도 다 빠져나갔다"며 "성안길이 장사가 안 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장사를 접을 수도 없고 지속하자니 관리비에 기름값까지 계산하면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 매장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폐업을 고려할 정도로 만만찮은 현실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불황·상권 지각변동 직격탄

청주지역의 상권 지도가 바뀌면서 직격탄을 맞은 원도심 지역은 좀처럼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택지지구 개발과 대규모 공동주택 건설에 따라 새로운 상권들이 부각되는 대신 오랜 기간 중심상권으로 자리잡아 온 원도심이 쇠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최근 청주지역 상권은 성안길 중심에서 율량동·사천동, 산남동, 용암동, 분평동, 가경동·복대동, 개신동 등 근린주거형 지구로 대폭 분산되는 모양새다.

2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충북의 중대형 상가 평균 공실률은 14.9%로 전국 평균인 11.5%을 3%p가량 웃돌았다. 전국에서는 6번째로 높은 수치다. 소규모 상가 평균 공실률도 6.3%로 전국 평균인 5.5%를 넘어섰다.

상가 공실률 증가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불황이다. 최근 2년여간 조세 및 부담금 증가로 가계 가처분소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소비와 함께 자영업 매출은 위축된 반면, 상가 임대료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아 기존 영업자가 영업을 포기해도 신규 진입자가 없다는 것이다.

소비패턴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2017~2018년 온라인쇼핑 규모는 약 91조 원에서 111조 원으로 22.6% 급증했다. 의류, 잡화, 화장품 등 매출이 겹치는 부문에서 오프라인 소규모 자영업을 적잖이 압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 부작용 역시 비용 부담 증가를 통해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 상황을 극단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안길의 경우 상권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로 유통구조와 소비패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되고 있는 유통구조 경쟁에서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소비력이 있는 30~40대는 현대백화점 충청점이나 롯데아울렛 청주점 등 인근 대형 유통매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성안길은 구매력이 적은 10~20대 비중이 늘어나다 보니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홍경표 성안길번영회장은 "지난 10여년간 성안길 점포가 1천200개에서 800개까지 줄어들었고 빈 점포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며 "공룡 유통기업이 생기면서 소비자를 흡수하고 있지만 발생한 이익은 지역에 환원하지 않아 지역경제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고 빈 점포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소라기자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