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우석 주필 에베레스트 트레킹 여행기 3

에베레스트 트레킹 (디보체-팡보체-딩보체)
쿰부 히말의 본격적인 풍광을 보다

2019.04.14 14:42:26

에베레스트와 로체가 여전히 멀리서 손짓한다. 히말라야의 맑고 시린 호흡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옮기는 걸음에도 조용히 전해진다. 순간 내 호흡과 히말라야의 숨이 마주한다. 하나가 된 듯 걷는 것조차 잊고 걷는다. 인간의 걸음이 산 호흡과 하나 돼 걸어간다. 히말라야에 깃든 인간의 생존이 평화롭다. 유장한 소리가 생명체의 존재를 알려준다. 묵연한 침묵과 우레 같은 공명이 조우한다.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3, 이제 정말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새벽 5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햇살이 어둠의 이불을 걷으려 하는 시각이다. 해발 3820m 산중 아침이 춥다. 숨이 가쁘다. 코끝에서 하얀 김이 나온다. 침낭 밖으로 쉽게 나오지 못한다. 30분 정도 꾸물대다 겨우 기어 나온다.

오전 7시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딩보체 쪽으로 간다. 캉데가 위에 앉은 백호를 다시 바라본다. 마을 하나를 지난다. 입구에서 초르텐이 먼저 반긴다. 자작나무의 일종인 거제수나무 숲이 경외감을 준다. 느티나무 성황당 숲을 연상시킨다.

초르텐을 지나니 관문처럼 생긴 문 없는 문이 나타난다. 선사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무문관’인가 잠시 생각해 본다. 문을 넘어 서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툭 터진 시야로 아마다블람(6856m)이 보이고 야크 방목장이 펼쳐진다.

당나귀 떼가 똥을 푸들푸들 누며 걸어간다. 오전 9시40분 팡보체를 통과한다. 돌담 쳐진 감자밭 풍경이 특이하다. 마치 제주도 돌담 농장을 연상시킨다. 민가 쪽 담벼락에 소년과 소녀가 서 있다. “나마스테”에 “나마스테”로 답한다.

팡보체 마을 다랑이논

눈망울이 아주 예쁜 아이들이다. 팡보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제법 큰 마을이다. 계단식 밭이 돌담을 경계로 만들어져 있다. 한 쪽으로 집들과 롯지가 들어서 있다. 마을 자체로도 아주 아름답다. 마을을 통과하니 산과 계곡물을 만나게 된다.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이번 트레킹 중 가장 큰 행복이다. 하늘은 청청하고 구름은 정백하다. 믿기 어려운 하늘색이다. 어떻게 저런 구름색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자연이 선물한 ‘운빨’로 재빨리 결론을 낸다.

팡보체의 계단식 논과 집들이 자꾸 눈길을 돌리게 한다. 청명한 날씨와 어우러져 여행객의 발걸음을 자꾸 머물게 한다. 팡보체 마을을 지나면서 풍경이 변한다. 키 큰 교목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그저 키 작은 떨기나무들만 무리지어 있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가슴도 답답해진다. 처음으로 겪는 난코스다. 수목한계선을 지난다. 간간히 눈에 띄던 거제수나무, 랄리그라스, 전나무 등 교목을 볼 수 없다. 향나무도 몸을 바짝 낮춘다. 거의 땅에 누워 자란다.

초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골프장을 조성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이름 모를 새들이 떼 지어 나타난다. 포르릉거림과 지저귐을 반복한다. 그리곤 이내 미련 없이 떠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새가 없다.

걸어오는 내내 계곡물 소리가 시원하다. 로체와 아마다블람 조망은 여전히 일품이다. 차분한 오르막을 쉽게 오른다. 산 위의 산양들이 고개를 들고 쳐다본다. 오전 11시20분 소마레(4010m) 마을에 도착한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히말라야 태양열 집열판

점심을 마치고 소마레를 지난다. 머잖아 탁 트인 초원을 만난다. 너른 초원이 펼쳐지고 고봉설산이 우뚝 선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런 아름다움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누른다. 일부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초원 위로 황량한 바람이 분다. 본격적인 에베레스트의 풍광이 시작된다. 팡보체와 딩보체 사이의 풍경은 지금까지 풍경과 다르다. 대단히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팡보체를 지나면서 우거진 숲을 볼 수 없다. 산은 점점 황량하다.

오후 1시50분 딩보체 가는 언덕길에 날리는 룽다를 바라본다. 파란 하늘 하얀 설산 시원한 바람이 조화를 이룬다. 강물의 수런거림과 바람의 수다를 듣는다. 사진에서나 만났던 에베레스트 산수가 보인다. 최소한의 생명만을 느낀다.

딩보체 롯지에 걸린 신문기사

아름다운 대초원을 지난다. 추쿵과 눕체(7855m), 아마다블람 등 설산 빙하가 녹아 흐른다. 임자콜라 강을 건넌다. 왼편으로 로부체 콜라강을 따르면 페리체다. 오른편으로 언덕을 넘으면 딩보체다. 계곡을 지나고 언덕을 올라 딩보체 마을에 선다.

마을 입구에 서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각이 절로 멎는다. 마을 입구의 큰 스투파(불탑)가 신장처럼 서 있다. 좌우는 설산의 거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큰 산 아래론 계곡이 흐른다. 터벅터벅 스투파를 지나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마침내 딩보체 야크롯지에 도착한다. 오후 3시50분이다. 오후 6시 동행한 쿡이 꽁치 캔을 풀어 김치찌개를 해준다. 고산에서 사라진 입맛을 다시 돌리게 해준다. 저녁을 마치고 초저녁 별 구경을 한다. 별무리가 하얗게 쏟아진다.

별 무리 사이로 빛나는 초승달을 바라본다. 초승달이 저리도 환히 빛날 수 있구나 새삼 느낀다. 한참을 망설이다 밤 9시 잠자리에 든다. 새벽녘 생리적 고통이 어김없이 이어진다. 침낭속의 외로움과 숨의 고마움을 교차해 느낀다.

다음날 새벽 5시 다시 눈을 뜬다. 오전 7시 아침식사를 하고 8시부터 시작한다. 트레킹 7일차 2차 고소적응 훈련을 한다. 남체에 이어 두 번째 이어지는 고소적응훈련이다. 훈련장소는 이 마을 뒤편에 있는 낭카르창 피크(5086m)다.

무려 600m를 단번에 수직으로 올려야 한다. 결연한 마음으로 배낭을 다부지게 고쳐 멘다. 무엇보다 공기가 부족해 숨을 쉬기가 불편하다. 다리의 문제거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숨의 문제, 호흡의 문제로 아주 괴롭다.

야크 방목 목동들의 숙소

한참을 언덕 위에 앉아 쉰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칼라파트라 정상을 위한 고소 적응훈련이다. 꿈을 향한 도전이다. 오르면서 보는 쿰부 히말라야의 풍경은 장엄하고 장백하다. 물론 내려올 땐 다시 순정으로 전환된다.

거북이걸음처럼 아주 느릿느릿 간다. 조금 올랐을 뿐인데 풍경은 아주 다르다.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전체가 깨어나는 딩보체 마을 모습이 보인다. 반대편 아래론 페리체 마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올라갈수록 설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설산을 배경으로 타르초가 어김없이 일렁인다. 룽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바람과 타르초, 룽다가 한 몸이 된다. 발 아래로 딩보체 마을이 까마득하다. 마침내 해발 5086m에 오른다.

낭카르창 산정에서 돌탑을 따라 타르초가 흩날린다. 한참을 낭카르창의 품에 몸과 마음을 기댄다. 히말라야의 호흡에 따라 거친 숨을 내쉰다. 햇살이 좋다. 바람이 분다. 바람과 햇살이 오고 간다. 시선이 고정되고 마음이 비로소 멈춘다.

침묵이 내려앉는다. 에베레스트의 위용이 여전하다. 오전 8시에 올라가 오후 1시30분에 내려온다. 완전한 고소적응 훈련이다. 오후 5시에 나온 딩보체식 찐 감자는 완전히 매력적인 맛이다. 아린 맛에 깃든 고소함을 잊기 어렵다.

딩보체와 페리체는 쿰부히말 지역의 중산간 마을이다. 임자 콜라와 로부체 콜라가 합류하는 지점 위쪽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마을은 낭카르창 피크 아래로 흘러내려온 커다란 언덕을 기점으로 나뉜다.

오늘도 롯지의 수다가 이어진다. 고산에서 지칠 법도 한데 지친 이들이 별로 없다. 네덜란드에서 온 남자 교포와 일행들은 음식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슬로베니아 모녀,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은 무엇 때문인지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페리체와 딩보체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다. 페리체에 묵는 이들은 주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즉, 바로 로부체나 칼라파타르로 가려는 이들이다. 혹은 딩보체에서 묵은 뒤 칼라파타르 서미트를 하고 오는 사람들이다.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홍보깃발

딩보체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개 이틀을 머문다. 하루를 고산적응의 날로 보낸다. 하루에 무려 고도를 700m나 올렸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고도변화에 하루쯤 적응이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게 순응하며 이틀을 머물렀다.

고소적응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생각한다. 로부체와 고랍셉, 칼라파타르를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떠올린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거냐를 생각한다. 100% 깨어 있는 정신으로 존재를 의식한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돈키호테’ 중에서 <계속>

/ 함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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